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19

데살로니가후서,
너무 서둘러
기다린 교회

"주의 날이 벌써 왔다"는 소문에 흔들린 교회에
바울이 서둘러 다시 써 보낸 편지

데살로니가후서 1–3장
여는 글

첫 번째 편지에서 바울은 주님이 "밤에 도둑 같이" 오신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 말이 엉뚱하게 번졌어요. 누군가 "주의 날이 벌써 왔다"고 떠들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일손을 놓아 버렸어요. 😄 곧 끝날 세상에 출근은 해서 뭐 하느냐는 거죠. 기다림이 지나쳐서 오히려 삶이 무너진 교회에게, 바울이 다시 펜을 들었어요.

그 짧은 편지 속에 재밌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어요. 응답받은 기도로 시작하는 첫 문장, 이사야서의 "여호와"를 예수님께 돌린 문장,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가져온 한 단어, 자기 신상을 성전에 세우려던 황제, 아우구스티누스도 "모르겠다"고 고백한 구절, 일은 안 하고 일만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바울의 이름을 사칭한 가짜 편지까지요. 그 흔적을 따라가면 한 분이 보여요. 그 입의 기운으로 악을 멸하실 주 예수님이에요(2:8).

1부

데살로니가후서는 어떤 책일까?

흔들리는 교회를 붙잡아 준 짧고 단단한 편지

데살로니가후서는 첫 번째 편지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쓴 편지예요. 보내는 사람도 똑같이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예요(1:1). 그래서 바울이 여전히 고린도에 머물던 주후 50–51년 무렵으로 봐요. 그사이 교회는 세 가지 문제를 겪고 있었어요. 박해는 더 심해졌고(1:4),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잘못된 가르침이 돌았고(2:2), 일하지 않고 남에게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생겼어요(3:11). 바울은 이 세 문제에 한 장씩 답해요.

짧은 편지세 장, 모두 마흔일곱 절이에요. 1장은 박해 속 위로, 2장은 주의 날에 대한 바른 가르침, 3장은 일상의 삶을 다뤄요.
친필 서명"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3:17). 가짜 편지와 구별하라고 직접 서명을 남겼어요.

※ 데살로니가후서를 바울이 직접 썼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교회는 처음부터 바울의 편지로 받아 왔어요. 두 편지의 순서가 반대였다고 보는 소수 견해도 있어요.

데살로니가후서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박해 속의 위로
"너희가 받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1:4). 고난이 끝이 아니라고 말해 줘요.
2
"아직은 아니다"
"그 날이 이르기 전에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2:3).
3
불법의 사람
신약에서 이 편지에만 나오는 이름이에요.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내세우는 자예요(2:4).
4
일하기 싫거든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3:10). 성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노동의 말씀이에요.
5
평강의 주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3:16). 흔들리는 교회에게 주는 마지막 복이에요.

데살로니가후서의 중심에는 이 말씀이 있어요.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3:3). 교회를 흔드는 것은 박해와 소문과 게으름이었지만, 교회를 붙드시는 분은 신실하신 주님이에요.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기도해요.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기를 원하노라"(3:5).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응답받은 기도부터 가짜 편지와 진짜 서명까지

1

첫 문장에 숨은
응답받은 기도

데살로니가후서 1:3 · 데살로니가전서 3:10-12
첫 번째 편지의 기도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살전 3:10),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3:12)
VS
두 번째 편지의 감사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살후 1:3)

두 편지를 나란히 놓고 읽으면 재밌는 게 보여요. 첫 번째 편지에서 바울은 두 가지를 위해 기도했어요. 교회의 부족한 믿음이 채워지는 것,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두 번째 편지는 바로 그 두 가지에 대한 감사로 시작해요. 믿음은 자라고, 사랑은 풍성해졌어요.

여기서 "더욱 자라고"로 옮긴 말은 휘페라욱사네이예요. "자라다"라는 말 앞에 "넘치도록"을 붙인 말인데,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와요. 바울이 기도한 것보다 더 크게 응답되었다는 느낌이 담겨 있어요.

그런데 이 교회는 여전히 박해를 받고 있었어요(1:4).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는데 믿음과 사랑은 자랐어요. 😄 바울이 "우리가 너희에 대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이라고 말할 만하죠. 교회를 자라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으니, 감사도 하나님께 돌아가는 게 당연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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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드린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지 돌아보고, 기도보다 크게 일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

이사야서의 "여호와"를
예수님께 돌린 문장

데살로니가후서 1:7-12 · 이사야 2:10 · 66:15

1장 7–10절은 주님이 오시는 날을 이렇게 그려요.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1:7), 그리고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형벌을 받으리라고요(1:9).

그런데 이 문장들은 바울이 새로 지어낸 말이 아니에요. 이사야서의 문장들을 엮어 만든 거예요. 이사야 66장 15절은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라고 하고, 이사야 2장 10절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해 바위 틈에 숨는다고 해요. 헬라어 구약 성경의 이사야 2장 10절과 살후 1장 9절은 표현이 아주 비슷해요.

놀라운 건 바울이 이 문장들의 주인공을 바꿨다는 거예요. 이사야서에서 불꽃 가운데 오시는 분은 여호와예요. 그런데 바울은 그 자리에 주 예수를 넣었어요. 구약에서 여호와께 드린 영광을 그대로 예수님께 돌린 거예요. 십자가와 부활 뒤 겨우 20년쯤 지난 때, 초대교회가 예수님을 누구로 믿었는지가 이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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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가운데 다시 오실 예수님이 곧 영광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예배합니다.
3

예수님이 쓰신 그 한 단어
"두려워하지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2:1-3 · 마태복음 24:4-6 · 마가복음 13:7
마태복음 24: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VS
데살로니가후서 2:2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교회를 흔든 소문은 이거였어요. "주의 날이 이르렀다"(2:2). 그러자 바울은 이렇게 말해요.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흔들리다"는 파도에 배가 흔들리는 모습에 쓰던 말이고, "두려워하다"는 놀라서 허둥대는 모습이에요.

그런데 이 "두려워하다"라는 말은 신약에서 딱 세 번 나와요. 마태복음 24장 6절, 마가복음 13장 7절, 그리고 여기예요. 앞의 두 곳은 모두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마지막 때를 말씀하시며 하신 말이에요.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아직 끝은 아니니라"(마 24:6). 바울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가져와 교회를 다독이고 있는 거예요.

내용도 닮았어요. 예수님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고 하셨고, 바울은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2:3)고 해요. 예수님은 "아직 끝은 아니니라" 하셨고, 바울은 그 날 전에 먼저 일어날 일들이 있다고 해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흥분이 아니라 차분함이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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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문에 허둥대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 위에 마음을 붙들어 맵니다.
4

하나님의 성전에
자기 신상을 세우려던 황제

데살로니가후서 2:3-4 · 다니엘 11:36

바울은 주의 날 전에 "불법의 사람"이 나타난다고 말해요.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2:4).

이 말을 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떠올렸을지도 몰라요. 이 편지가 쓰이기 불과 10년쯤 전인 주후 40년, 로마 황제 칼리굴라는 예루살렘 성전에 자기 신상을 세우라고 명령했어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이 이 일을 기록했어요. 시리아 총독 페트로니우스가 명령 수행을 미루는 사이 칼리굴라가 암살되면서,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주전 167년, 시리아의 왕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제우스의 제단을 세운 일도 있었어요. 다니엘서는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단 11:36)라는 말로 이런 왕을 예언했어요. 바울의 "불법의 사람"은 이 모든 교만한 왕들이 가리키던 마지막 모습이에요. 😄 그런데 그 결말은 싱겁기까지 해요.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2:8). 칼도 군대도 필요 없어요. 말씀 한 마디면 끝이에요.

※ 칼리굴라 사건을 2:4의 배경으로 보는 것은 여러 학자들의 제안이에요. "불법의 사람"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교회사 내내 다양한 해석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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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권세가 결국 주님의 입의 기운 앞에 무너짐을 믿고, 오늘 나 자신을 낮춥니다.
5

아우구스티누스도
"모르겠다"고 한 구절

데살로니가후서 2:5-8 · 이사야 11:4

2장 6–7절은 신약에서 가장 어려운 구절 가운데 하나예요.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지 못하게 지금 무언가가, 또는 누군가가 막고 있다는 거예요.

문제는 바울이 그게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바로 앞 절에서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2:5)고 해요. 😄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이미 들어서 알았는데, 우리는 못 들었어요. 그래서 2–3세기의 테르툴리아누스는 로마 제국이라고 봤고, 다른 사람들은 복음 전파, 하나님의 법, 성령님이라고 보기도 했어요.

5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성』에서 이 구절을 두고 여러 해석을 소개한 뒤, 솔직하게 고백해요. 바울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나는 모르겠다고요. 가장 큰 신학자의 이 정직한 고백이 오히려 위로가 돼요. 우리가 다 알지 못해도 괜찮아요. 분명한 건 막는 분도, 때를 정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결말은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예요.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사 11:4).

※ "막는 것/막는 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 정해진 답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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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지 못하는 것 앞에서 겸손히 멈추고, 역사의 때를 쥐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6

일은 안 하고
일만 만드는 사람들

데살로니가후서 3:6-15

3장에서 바울은 교회 안의 게으르게 행하는 사람들을 꾸짖어요(3:6, 11). 이 말은 원래 군대에서 대열을 벗어난 병사를 가리키던 말이에요. 게으름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줄을 흐트러뜨리는 일이라는 거예요.

3장 11절에는 헬라어 말놀이가 숨어 있어요.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 헬라어로는 "일하다"와, 그 앞에 짧은 말 하나를 붙인 단어가 나란히 나와요. 우리말로 옮기면 딱 이 느낌이에요. 일은 안 하고 일만 만든다. 😄 자기 일은 안 하면서 남의 일에 참견하느라 바쁜 사람들이었던 거예요.

바울은 자기를 본보기로 내세워요.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3:8). 그리고 그 유명한 말이 나와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3:10). 이 말은 교회 밖에서도 널리 쓰였어요. 1609년 미국 제임스타운 정착지의 지도자 존 스미스가 굶주린 정착민들 앞에서 이 원칙을 선포했고, 1936년 소련 헌법에도 이 문장이 들어갔어요. 하지만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해요.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3:15). 게으른 사람도 끝까지 형제예요.

※ "아탁토스"가 당시 도제 계약서에서 결근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 예는 이집트 파피루스에서 확인돼요. 게으름의 원인이 재림에 대한 오해였는지, 다른 사회적 이유였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나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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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오늘 맡겨진 일을 놓지 않고, 조용히 내 일을 성실하게 합니다.
7

바울을 사칭한 가짜 편지
그리고 진짜 서명

데살로니가후서 2:2 · 3:17 · 갈라디아서 6:11 · 로마서 16:22

2장 2절에는 놀라운 말이 있어요. 성도들이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바울의 이름을 빌린 편지가 돌았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에요. 😄 사도가 살아 있을 때 벌써 가짜 뉴스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편지 끝에 이렇게 써요.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3:17). 그 시대에는 편지를 받아 적는 대필자를 쓰는 일이 흔했어요. 로마서도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롬 16:22)라는 대필자의 인사가 있어요. 바울은 대필자가 쓴 편지 끝에 자기 손으로 인사를 덧붙여 진짜임을 보여 줬어요. 갈라디아서에서는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갈 6:11)고도 해요.

그리고 그 친필로 쓴 마지막 문장은 이거예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3:18). 가짜 편지는 사람을 흔들고 두렵게 했어요. 진짜 편지는 은혜로 끝나요. 참된 말씀인지 아닌지는 결국 그 말씀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데려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어요.

※ 2:2의 "편지"가 실제로 바울을 사칭한 가짜 편지였는지, 첫 번째 편지를 잘못 이해한 것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돌아보기
나를 흔들고 두렵게 하는 말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끄는 참된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맺는 글
서둘러 기다리지 말고
신실하게 기다리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주님을 너무 간절히 기다린 나머지 흔들렸어요. 소문에 놀라고, 일손을 놓고, 두려워했어요. 바울은 그 기다림을 나무라지 않았어요. 다만 기다림의 모양을 바로잡아 주었어요. 주님은 반드시 오시고, 그때까지 하나님이 역사의 때를 쥐고 계신다고요.

그러니 기다리는 사람은 허둥대지 않아요. 오늘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하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아요(3:13). 우리를 굳건하게 하시고 지키시는 분이 신실하신 주님이기 때문이에요. 흔들리는 소문 속에서도, 평강의 주님이 때마다 일마다 평강을 주세요.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3:3)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