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17

골로새서,
작은 마을에 보낸
가장 큰 그리스도

바울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교회에
"그리스도가 전부"라고 써 보낸 편지

골로새서 1–4장
여는 글

골로새는 바울 시대에 이미 한물간 작은 도시였어요. 19세기 영국의 성서학자 라이트풋은 골로새를 두고 "바울이 편지를 보낸 곳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도시"라고 했을 정도예요. 게다가 바울은 이 교회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작은 교회에 보낸 네 장짜리 편지에,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가장 크게 그린 말씀이 들어 있어요.

그 편지 속에 재밌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어요. 무릎으로 싸운 개척자, 시편에서 가져온 "장자"라는 말, 십자가에 못 박힌 빚 문서, 나중에 이 지역에서 벌어진 천사 숭배의 역설, 인사말 속에 숨은 두 동역자의 엇갈린 운명, 그리고 옆 동네와 돌려 읽은 편지까지요. 그 흔적을 따라가면 한 분이 보여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선 그리스도예요(1:17).

1부

골로새서는 어떤 책일까?

가 보지 못한 교회에 보낸 그리스도 중심의 편지

골로새는 지금의 튀르키예 서남부, 루커스 강 골짜기에 있던 도시예요. 가까이에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가 있었어요(4:13). 옛날에는 큰 도시였지만 바울 시대에는 이웃 라오디게아에 밀려 작은 도시가 되었어요. 이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복음을 들은 골로새 사람 에바브라가 세웠어요(1:7). 바울은 감옥에서 에바브라에게 교회 소식을 듣고, 헛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말라고 이 편지를 썼어요. 로마에 갇혀 있던 주후 60–62년 무렵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사라진 도시주전 5세기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골로새를 "큰 도시"라 불렀어요. 하지만 지금은 도시가 사라지고, 튀르키예 호나즈 마을 근처에 흙 언덕만 남아 있어요.
함께 간 편지들두기고와 오네시모가 이 편지를 들고 갔어요(4:7-9). 같은 때에 빌레몬서와 에베소서도 함께 전해진 것으로 봐요. 에베소서와 내용이 닮은 곳이 많아요.

※ 골로새서를 바울이 직접 쓴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교회는 처음부터 바울의 편지로 받아 왔어요.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주후 60년 무렵 라오디게아가 큰 지진으로 무너졌다고 기록했는데, 골로새도 그때 피해를 입었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어요.

골로새서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가 보지 못한 교회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2:1). 바울이 직접 세우지 않은 교회에 보낸 편지예요.
2
그리스도 찬가
1장 15–20절은 창조와 구원 모두의 중심에 계신 그리스도를 노래해요.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가장 높이 그린 말씀 가운데 하나예요.
3
헛된 철학에 대한 경고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2:8). 먹고 마시는 규칙, 절기, 천사 숭배를 내세우던 가르침을 경계해요.
4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3:2).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사람의 새로운 삶을 옷을 갈아입는 모습으로 그려요.
5
친필 인사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4:18). 쇠사슬에 묶인 손으로 마지막 인사를 직접 써요.

골로새서의 중심에는 이 말씀이 있어요.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2:9-10). 그리스도께 무엇을 더 보태야 완전해지는 게 아니에요. 그리스도 한 분 안에 이미 모든 것이 있어요.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해요.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3:11).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무릎으로 싸운 개척자부터 옆 동네와 돌려 읽은 편지까지

1

무릎으로 씨름한
개척자 에바브라

골로새서 1:7-8 · 4:12-13 · 빌레몬서 1:23

골로새 교회를 세운 사람은 바울이 아니라 에바브라예요. 골로새 출신인 그는 아마 에베소에서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를 세운 것 같아요. 바울이 에베소에서 두 해 동안 가르치는 사이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10)고 했는데, 에바브라가 그 열매 가운데 하나였을 거예요. 바울은 그를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1:7)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에바브라는 교회에 헛된 가르침이 들어오자 멀리 로마의 감옥까지 바울을 찾아갔어요. 그리고 어느새 그 자신도 "나와 함께 갇힌 자"가 되었어요(몬 1:23). 감옥에서 에바브라가 한 일은 기도였어요.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4:12). 이 "애쓰다"는 원래 경기장에서 레슬링 선수가 씨름하는 모습을 가리키던 말이에요. 영어 agony의 뿌리이기도 해요.

에바브라는 고향 골로새만이 아니라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4:13)도 수고했어요. 몸은 감옥에 있어도 무릎으로는 루커스 골짜기의 세 교회를 품고 있었던 거예요. 😄 바울의 편지는 이름을 남겼지만, 그 편지가 쓰이게 한 사람은 조용히 무릎 꿇은 개척자였어요.

※ 에바브라가 에베소에서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들었다는 것은 본문을 바탕으로 한 추정이에요. "에바브라"는 빌립보서의 "에바브로디도"를 줄인 형태의 이름이지만, 두 사람은 다른 인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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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자리의 일보다 먼저, 내가 품은 사람들을 위해 무릎으로 씨름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2

시편에서 가져온
"먼저 나신 이"

골로새서 1:15-20 · 시편 89:27

1장 15–20절은 그리스도를 이렇게 노래해요.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1:15). 여기서 "먼저 나신 이"는 "맏아들", 곧 장자라는 뜻이에요.

이 말에는 구약의 뿌리가 있어요. 하나님은 다윗의 왕통을 두고 이렇게 약속하셨어요.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시 89:27). 여기서 장자는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라는 뜻보다 모든 왕 위에 서는 으뜸의 자리를 뜻해요. 그러니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는 예수님이 첫 번째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 위에 계신 상속자라는 뜻이에요. 바로 다음 절이 그걸 분명히 해요.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1:16).

교회사에서도 이 구절은 중요한 싸움터였어요. 4세기의 아리우스는 이 구절을 들어 "아들도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존재"라고 주장했어요. 교회는 주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그리스도께서 창조되지 않으시고 나셨으며, 아버지와 본질이 같으신 참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어요. 그리고 1장 17절은 그리스도가 지금도 하시는 일을 말해요.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온 세상이 흩어지지 않고 서 있는 건, 그분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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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내 삶의 여러 좋은 것 가운데 하나로 두지 않고, 만물을 지으시고 지금도 붙드시는 으뜸으로 모십니다.
3

십자가에 못 박힌
우리의 빚 문서

골로새서 2:13-15 · 요한복음 19:19 · 고린도후서 2:14
빌라도가 붙인 패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 19:19). 예수님의 죄목이라며 십자가 위에 붙였어요.
VS
하나님이 붙이신 문서
우리를 거스르던 빚 문서를 지우시고 그 십자가에 못 박으셨어요(골 2:14).

2장 14절은 이렇게 말해요.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여기서 "증서"는 원래 빚진 사람이 자기 손으로 써서 서명한 차용증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내가 이만큼 빚졌습니다" 하고 내 손으로 쓴 문서예요.

그 시대 문서는 파피루스에 잉크로 썼어요. 잉크가 마르기 전이나 지우개로 문지르듯 닦아 내면 글자가 지워졌죠. "지우시고"라는 말이 바로 그렇게 글씨를 닦아 없애는 말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 빚 문서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어요. 로마 사람들은 십자가 위에 죄인의 죄목을 적은 패를 붙였어요. 예수님의 십자가에도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가 붙었죠.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십자가에 붙은 진짜 문서는 우리의 빚 목록이었어요. 예수님이 우리 빚을 대신 지고 달리신 거예요.

그리고 15절이 이어져요.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이 "이기셨다"는 고린도후서 2장에서 본 로마 개선 행렬의 단어예요. 세상이 보기엔 십자가가 패배였지만,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개선 행렬로 바꾸셨어요.

※ 십자가 위의 죄패와 2:14의 "빚 문서"를 연결하는 것은 여러 설교자와 주석가들이 즐겨 쓰는 해석이에요. 본문이 직접 죄패를 언급하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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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갚을 수 없던 빚 문서가 이미 지워져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고, 그 은혜 앞에 감사합니다.
4

"천사 숭배를 조심하라"
그 지역에 벌어진 일

골로새서 2:16-23
그림자
먹고 마시는 규칙, 절기, 초하루, 안식일
VS
몸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2:17)

골로새 교회를 흔들던 가르침은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었어요. 먹고 마시는 규칙, 절기와 초하루, 그리고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2:18)까지요. 바울은 그들의 구호를 그대로 옮겨 적어요.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2:21). 😄 금지 조항만 세 개가 연달아 나와요. 그러고는 한마디로 정리해요. 그건 다 사람의 규칙일 뿐, 육체의 욕심을 막는 데는 아무 힘이 없다고요(2:22-23).

바울은 이 모든 것을 그림자와 몸에 빗대요.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2:17).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올 때 그림자가 먼저 보이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눈앞에 왔는데도 계속 바닥의 그림자만 붙잡고 있으면 이상하죠. 절기와 규칙은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준 그림자였어요. 이제 몸이신 분이 오셨어요.

그런데 역사에는 씁쓸한 뒷이야기가 있어요. 바울이 천사 숭배를 경고한 이 루커스 골짜기에서, 몇백 년 뒤 천사를 섬기는 풍습이 크게 번졌어요. 4세기에 바로 옆 도시에서 열린 라오디게아 회의는 교회를 떠나 천사의 이름을 부르는 모임을 금지했어요. 5세기의 교부 테오도레토스는 골로새서 2장을 풀이하면서, 그 지역에 천사장 미가엘에게 기도하는 곳들이 있다고 기록했어요. 골로새 근처 호나즈에는 미가엘에게 바친 유명한 교회까지 세워졌어요. 바울의 경고가 얼마나 필요했는지 보여 주는 이야기예요.

※ 골로새 교회를 흔든 가르침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여러 의견이 있어요. 라오디게아 회의의 연대는 대략 4세기 중후반으로 봐요.

돌아보기
눈에 보이는 규칙과 신비한 체험을 붙잡기보다, 그림자가 가리키던 몸이신 그리스도를 붙듭니다.
5

옛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사람

골로새서 2:12 · 3:1-14

3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옷 갈아입기로 그려요.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3:9-10). 분냄과 악의와 비방은 벗어 버리고,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3:12), 그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3:14). 옷을 다 입고 마지막에 허리띠를 매듯, 사랑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준다는 거예요.

이 그림은 침례와 이어져 있어요. 바울은 앞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2:12). 초대교회 기록에는 침례를 받는 사람이 입던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새 옷을 입었다는 내용이 나와요.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다는 말이 눈으로 보이는 예식이 된 거예요.

그리고 그 새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인 곳을 이렇게 말해요.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3:11). 스구디아 사람은 당시 사람들이 야만인 중의 야만인으로 여기던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도 똑같은 새 옷을 입고 한 식탁에 앉아요.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 침례 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모습은 주로 3세기 이후의 교회 기록에 나와요. 바울 시대에도 그랬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돌아보기
침례 때 벗어 버린 옛 옷을 다시 꺼내 입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오늘도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사랑의 띠를 맵니다.
6

인사말에 나란히 선
누가와 데마

골로새서 4:7-14 · 디모데후서 4:10-11 · 사도행전 15:37-39
골로새서 4: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VS
디모데후서 4:10-11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편지 끝 인사말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골로새서의 인사말에는 인생 드라마가 숨어 있어요. 먼저 오네시모가 나와요.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4:9). 그는 골로새 사람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쳤던 종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바울은 그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라고 부르며 교회 앞에 세워요.

다음은 마가예요. "바나바의 생질 마가"(4:10). 마가는 1차 전도여행 도중에 돌아가 버려서, 2차 전도여행 때는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문제로 크게 다투고 갈라섰어요(행 15:37-39). 그런 마가를 바울이 이제 동역자로 소개하고, 훗날에는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까지 말해요. 한 번 넘어진 사람을 다시 세우시는 은혜예요. 그리고 "유스도라 하는 예수"(4:11)도 나와요. 이름이 예수인 동역자예요. 😄 당시 유대인 사이에서 흔한 이름이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에 두 사람이 나란히 나와요.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4:14). 같은 감옥 곁에서 같은 인사를 보낸 두 사람이에요. 그런데 몇 해 뒤, 바울의 마지막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딤후 4:10-11). 한때 나란히 서 있던 두 사람의 길이 이렇게 갈렸어요.

※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종이었다는 것은 빌레몬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에요. 누가와 데마가 골로새서를 쓸 때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성경이 자세히 말하지 않아요.

돌아보기
오늘 믿음의 자리에 나란히 서 있다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 곁에 남는 사람이 되도록 은혜를 구합니다.
7

옆 동네 교회와
돌려 읽은 편지

골로새서 4:15-18 · 요한계시록 3:14-22

편지 끝에 바울은 이런 부탁을 해요.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4:16). 교회들이 사도의 편지를 서로 돌려 읽었다는 거예요. 이렇게 돌려 읽고 베껴 쓰던 편지들이 모여서, 우리가 지금 손에 든 신약 성경이 되었어요.

그런데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는 어디 갔을까요? 지금 우리 성경에는 그런 제목의 편지가 없어요. 잃어버린 편지라고 보기도 하고, 여러 교회에 돌리던 에베소서가 바로 그 편지라고 보기도 해요. 중세에는 누군가 "라오디게아인에게 보낸 편지"라는 짧은 라틴어 편지를 지어내서 돌리기도 했는데, 교회는 그것을 바울의 편지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30여 년 뒤 성경에 한 번 더 나와요. 요한계시록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이 교회를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계 3:15)라고 책망하셨어요. 부유한 도시에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던 교회였어요(3:17). 골로새서가 그렇게 "그리스도가 전부"라고 외쳤던 이웃 교회가, 그리스도 없이도 넉넉하다고 여기게 된 거예요. 그래도 주님은 그 교회를 버리지 않으셨어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3:20).

※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요. 에베소서라는 견해는 여러 학자들의 추정이에요. 요한계시록의 기록 연대는 주후 90년대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돌아보기
넉넉하다는 생각에 그리스도를 문 밖에 세워 두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두드리시는 주님께 오늘 문을 엽니다.
맺는 글
가장 작은 도시에 보낸
가장 큰 그리스도

골로새서는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의, 바울이 얼굴도 본 적 없는 교회에 보낸 편지예요. 그런데 그 작은 교회에게 바울은 우주보다 크신 그리스도를 전해요. 만물을 지으신 분, 지금도 붙들고 계신 분, 우리의 빚 문서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분, 교회의 머리이신 분이에요.

헛된 가르침은 늘 "그리스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속삭여요. 규칙을 더하고, 체험을 더하고, 특별한 지식을 더해야 한다고요. 골로새서의 대답은 분명해요. 그리스도 안에 이미 충만하다는 거예요. 교회가 작아도, 형편이 초라해도, 우리가 붙든 분이 가장 크신 분이에요.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17)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