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09

마가복음,
곧바로
달려가는 복음

잠시도 멈추지 않고 달려가던 이야기가
십자가 앞에서 비로소 멈춰 선다

마가복음 1–16장
여는 글

마가복음은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짧아요. 동방박사도, 목자들도, 족보도 없어요. 첫 절에서 "복음의 시작"을 알리자마자 침례 요한이 나오고, 몇 줄 뒤에 벌써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세요. 숨 돌릴 틈이 없어요. 한 자리에 앉아 한 시간 남짓이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예요.

그런데 짧다고 가볍게 넘기면 아까운 책이에요. 마가는 같은 단어를 책의 처음과 끝에 몰래 심어 두고, 이야기 두 개를 샌드위치처럼 겹쳐 놓고, 예수님이 쓰시던 아람어를 그대로 남겨 두었어요.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한 곳에 이르러요. 섬기러 오셔서 목숨을 내어 주신 예수님이요.

1부

마가복음은 어떤 책일까?

가장 짧고, 가장 빠르고, 가장 생생한 복음서

마가복음에도 저자 이름은 적혀 있지 않지만, 초대교회는 한결같이 이 책을 마가 요한이 쓴 복음서로 전해 왔어요. 사도행전에 여러 번 나오는 바로 그 사람이에요. 많은 학자들은 마가복음을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책으로 보고, 60년대 무렵 로마에서 박해를 겪던 성도들을 위해 쓴 것으로 봐요. 그래서인지 유대 풍습을 따로 설명해 주고(7:3-4), 아람어를 번역해 주고, 로마 사람들이 쓰던 말을 자주 섞어 써요.

마가는 누구일까?예루살렘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던 집이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어요(행 12:12). 바나바의 생질이었고(골 4:10), 바울의 첫 전도여행에 따라나섰다가 중간에 돌아갔어요(행 13:13).
베드로의 통역자베드로는 편지에서 그를 "내 아들 마가"라고 불러요(벧전 5:13). 초대교회는 마가가 베드로 곁에서 들은 이야기를 이 복음서에 담았다고 전해요.

※ 2세기 초 파피아스는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자가 되어, 기억한 것을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정확하게 기록했다"고 전했어요(유세비우스 『교회사』 3.39). 기록 장소와 연대는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어요.

마가복음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곧"이라는 말
"곧, 즉시"라는 뜻의 헬라어 "유튀스"가 마흔 번 넘게 나와요. 장면이 끊임없이 다음 장면으로 달려가요.
2
가장 짧은 복음서
16장뿐이에요. 탄생 이야기 없이, 곧장 예수님의 사역으로 들어가요.
3
예수님의 표정이 보이는 책
노하심으로 둘러보시고(3:5), 부자 청년을 보시고 사랑하시고(10:21), 배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4:38) 모습은 마가만 기록했어요.
4
말씀보다 발걸음
긴 설교보다 행하신 일이 많이 나와요. 예수님은 가르치시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시는 분으로 그려져요.
5
숨기지 않는 제자들의 실패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다투고, 도망가는 모습이 그대로 적혀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믿음직한 책이에요.

마가복음의 핵심은 한 절에 담겨 있어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1:1)으로 열고, 십자가 앞에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15:39)라는 고백으로 정점에 이르러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찢어진 하늘부터 끝나지 않은 결말까지, 마가가 숨겨 둔 이야기들

1

하늘이 찢어지고,
휘장이 찢어지다

마가복음 1:9-11 · 15:37-39 · 이사야 64:1
책의 시작 (1:10-11)
하늘이 갈라지고, 하나님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세요.
VS
책의 끝 (15:38-39)
성소 휘장이 찢어지고, 로마 백부장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해요.

예수님이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짐"을 보셨어요(1:10). 마태와 누가는 여기서 하늘이 "열렸다"고 쓰는데, 마가만 훨씬 거친 단어를 써요. 헬라어 스키조, 곧 "찢다"라는 말이에요.

이 단어가 마가복음 마지막 부분에 딱 한 번 더 나와요. 예수님이 큰 소리를 지르고 숨지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15:38). 하나님이 하늘을 찢고 내려오셔서 시작된 이야기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던 휘장이 찢어지는 것으로 완성되는 거예요. 그것도 위에서부터 아래로, 하나님 쪽에서 찢으셨어요.

그리고 두 장면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뒤따라요. 처음엔 하늘에서 들린 하나님의 음성이었고, 마지막엔 예수님을 처형한 로마 군인의 입에서 나왔어요.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처음 고백한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이방인 백부장이었다는 게 참 놀라워요.

이사야 선지자는 오래전에 이렇게 기도했어요.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사 64:1). 마가는 그 기도가 예수님 안에서 응답되었다고 조용히 말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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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찢고 내려오시고 휘장을 찢어 길을 여신 하나님 덕분에, 오늘 내가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기억합니다.
2

열두 해 앓은 여인과
열두 살 소녀

마가복음 5:21-43

마가는 이야기 하나를 시작해 놓고, 중간에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은 다음,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오는 방식을 즐겨 써요. 샌드위치 같은 구성이에요. 5장이 대표적이에요.

빵회당장 야이로가 죽어 가는 딸을 살려 달라고 엎드려요(5:22-24).
속가는 길에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요(5:25-34).
빵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오고, 예수님은 소녀를 살리세요(5:35-43).

두 이야기를 겹쳐 보면 숨은 연결이 보여요. 여인은 열두 해를 앓았고(5:25),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어요(5:42). 소녀가 태어나 자라는 동안, 여인은 그 세월을 병과 싸우며 보낸 거예요. 한 사람은 회당장의 딸로 존경받는 집안이고, 다른 한 사람은 율법상 부정한 사람이라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도 못했어요(레 15:25).

마가는 여인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 도리어 더 중하여졌다"고 솔직하게 써요(5:26). 그런데 의사였던 누가는 같은 장면을 쓰면서 이 부분을 훨씬 부드럽게 줄였어요(눅 8:43). 동료 의사들 체면을 생각했을까요? 😄

예수님은 부정한 여인의 손길을 피하지 않으셨고, 죽은 소녀의 손을 잡으셨어요. 둘 다 율법으로는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접촉이에요. 그런데 부정이 예수님께 옮겨 간 게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이 그들에게 흘러갔어요. 그리고 사람들 앞에 숨어 있던 여인을 예수님은 "딸아"라고 부르셨어요(5:34). 그날 예수님은 딸 둘을 찾으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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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까이하지 않던 사람을 "딸아" 하고 부르신 예수님이, 오래 지친 나도 그렇게 부르고 계심을 기억합니다.
3

예수님의 목소리와
로마의 동전 한 닢

마가복음 3:17 · 5:41 · 7:34 · 12:42 · 14:36 · 15:34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됐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평소에 쓰신 말은 아람어였어요. 마가복음에는 그 아람어가 번역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은 곳이 유난히 많아요. 마치 예수님의 목소리를 녹음해 둔 것처럼요.

보아너게 — "우레의 아들"(3:17). 야고보와 요한에게 붙여 주신 별명이에요. 성격이 얼마나 급했으면요. 😄
달리다굼 — "소녀야 일어나라"(5:41). 엄마가 아침에 아이를 깨우듯 부르신 말이에요.
에바다 — "열리라"(7:34). 듣지 못하는 사람의 귀를 여실 때 하신 말씀이에요.
아빠 — "아빠 아버지여"(14:36). 겟세마네 기도예요. 복음서 가운데 이 단어를 남긴 곳은 마가복음뿐이에요.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5:34). 시편 22편 1절이에요.

반대로, 로마 사람들에게 익숙한 라틴어도 곳곳에 섞여 있어요. 가난한 과부가 넣은 헌금을 설명하면서 마가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라고 덧붙여요(12:42). 렙돈은 유대 땅의 가장 작은 동전이고, 고드란트는 로마 동전(쿼드란스)이에요. 로마 독자들에게 "여러분 돈으로 치면 이 정도예요" 하고 환산해 준 거예요.

그래서 마가복음을 읽으면 두 목소리가 함께 들려요. 갈릴리 시골에서 아람어로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목소리, 그리고 그 말씀을 로마의 성도들에게 한 마디 한 마디 풀어 주던 마가의 목소리요. 복음은 처음부터 번역되어 온 세상으로 건너가도록 만들어진 이야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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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굼", "에바다" 하고 부르시던 그 음성이 오늘 내 이름을 부르시며 일으키고 여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4

베드로가 자기 실수를
빼지 않고 들려준 복음

마가복음 8:27-33 · 14:30, 66-72 · 16:7
마태복음의 베드로
고백 뒤에 "네가 복이 있도다 … 이 반석 위에"라는 칭찬이 나오고(마 16:17-18), 물 위를 걸은 이야기도 있어요.
VS
마가복음의 베드로
칭찬은 빠지고 곧바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꾸중이 나와요(8:33). 물 위를 걸은 이야기도 없어요.

초대교회가 전한 대로 마가가 베드로의 설교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면, 참 재미있는 일이 생겨요. 베드로가 칭찬받은 장면은 빠지고, 꾸중 듣고 실패한 장면은 고스란히 남아 있거든요. 베드로가 설교할 때마다 자기 자랑은 빼고 자기 실수만 이야기했던 걸까요?

마가복음에만 있는 작은 숫자 하나가 있어요. 예수님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어요(14:30). 다른 복음서들은 그냥 "닭 울기 전에"라고 써요. 마가복음에서는 베드로가 첫 번째 부인한 뒤 닭이 한 번 울었는데도(14:68) 멈추지 못하고, 두 번째 닭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무너져 울어요(14:72). 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아는 사람은 베드로 자신밖에 없어요.

그런데 마가는 이 실패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아요. 빈 무덤에서 천사는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16:7). 베드로도 제자인데 왜 이름을 따로 불렀을까요? 세 번 부인하고 자기는 이제 제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한 사람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콕 집어 부르신 거예요. 이 이름도 마가복음에만 있어요.

※ 마가복음이 베드로의 증언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은 파피아스 이후의 초대교회 전승이에요. 마가가 어떤 이유로 어떤 장면을 넣고 뺐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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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부인한 것 같은 날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이름을 따로 불러 다시 부르신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5

모든 것을 버렸던 제자들,
결국 예수님을 버리다

마가복음 10:28 · 14:50-52 · 15:46
10:28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VS
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두 구절의 "버리다"는 헬라어로 아피에미, 같은 단어예요. 예수님을 따르려고 배와 그물과 가족을 버렸다고 자랑하던 제자들이, 정작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어요. 마가는 같은 단어로 그 아이러니를 조용히 보여 줘요.

그리고 바로 뒤에 복음서 전체에서 가장 이상한 두 절이 나와요.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14:51-52). 이름도 없고, 앞뒤 설명도 없어요. 마태도 누가도 요한도 이 장면은 빼 버렸어요. 마가만 적었어요.

여기서 "베 홑이불"은 헬라어로 신돈이에요. 이 단어가 마가복음에 한 번 더 나와요.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쌀 때 사 온 "세마포"(15:46)예요. 청년은 그 천을 버리고 달아났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그 천에 싸여 무덤까지 가셨어요. 모두가 버리고 떠난 길을 예수님 혼자 끝까지 걸어가신 거예요.

※ 이 청년이 마가 자신이라는 추측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어요.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이 일종의 "서명"이라는 거예요. 그럴듯하지만 본문에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어디까지나 추정으로 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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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버렸다"고 말하던 내가 쉽게 주님을 떠나는 사람임을 인정하고,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으신 예수님을 붙듭니다.
6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
그의 두 아들 이름

마가복음 15:21 · 로마서 16:13 · 사도행전 11:20

로마 군인들은 지나가던 한 사람을 붙잡아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했어요. 네 복음서 가운데 세 곳에 나오는 장면인데, 마가만 이 사람을 이렇게 소개해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15:21).

생각해 보면 이상하죠. 십자가를 진 사람은 시몬인데, 왜 굳이 아들들 이름까지 적었을까요? 가장 자연스러운 설명은 이거예요. 마가복음을 처음 읽던 성도들이 그 두 아들을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아시죠? 알렉산더와 루포, 그 형제의 아버지 말이에요"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마가복음이 기록된 곳으로 여겨지는 로마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인사해요.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 16:13). 바울에게 어머니처럼 대해 준 여인이 있었는데, 그 아들 이름이 루포였어요. 억지로 십자가를 졌던 한 사람의 가족이, 훗날 로마 교회의 귀한 일꾼이 되었을지도 몰라요.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오늘날 리비아)의 도시예요. 오순절에 성령 강림을 본 사람들 가운데 구레네 사람들이 있었고(행 2:10),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헬라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한 사람들 가운데도 구레네 사람들이 있었어요(행 11:20). 억지로 진 십자가가 한 가족을, 그리고 교회의 역사를 바꿔 놓았을지도 몰라요.

※ 로마서 16장의 루포가 마가복음의 루포와 같은 사람인지는 확정할 수 없어요. 또 1941년 예루살렘 기드론 골짜기에서 구레네 출신 유대인 가족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의 유골함 하나에 "시몬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어요. 흥미로운 발견이지만, 같은 인물인지는 알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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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게 지게 된 오늘의 짐도, 예수님 곁에서 지는 짐이라면 하나님이 복된 이야기로 바꾸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7

"무서워함이더라",
이상하게 끝나는 책

마가복음 16:1-8

마가복음 16장 8절은 이렇게 끝나요.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 그들이 무서워함이더라." 부활의 소식을 들었는데, 기뻐 뛰어가 전하는 장면이 아니라 무서워 입을 다무는 장면이에요.

그런데 우리 성경을 펴 보면 그 뒤에 9절부터 20절까지가 이어져 있어요. 여기에 숨은 이야기가 있어요.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온전한 성경 사본 두 권, 4세기의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에는 마가복음이 8절에서 끝나요. 9-20절은 그보다 뒤의 사본들에 들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말 성경 가운데에도 이 부분에 괄호나 설명을 달아 둔 번역들이 있어요.

만약 마가복음이 정말 8절에서 끝났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열어 둔 결말일 수도 있어요. 제자들은 도망쳤고, 여인들은 두려워 입을 닫았어요. 그러면 이 소식은 누가 전하죠? 책을 덮는 독자에게 질문이 넘어오는 거예요. "이제 당신은 이 소식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바로 앞 절에는 이미 약속이 있어요. "그가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 거기서 뵈오리라"(16:7). 사람들은 두려워 멈춰 섰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벌써 앞서 가고 계셨어요. 마가복음의 마지막 "곧"은 예수님의 발걸음이었던 거예요.

※ 마가복음이 원래 16:8에서 끝났는지, 원래 있던 결말이 사라진 것인지는 학자들 사이에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문제예요. 어느 쪽이든 부활의 사실과 그 뒤 제자들의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분명히 증언하고 있어요.

돌아보기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던 부활의 소식을, 나보다 앞서 가시는 예수님을 믿고 오늘 한 사람에게 전합니다.
맺는 글
도망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가시는 예수님

마가복음에는 도망친 사람이 많아요.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진 제자들, 옷까지 버리고 달아난 청년, 무덤에서 떨며 뛰어나온 여인들. 그리고 이 책을 쓴 마가 자신도 한때 전도여행 도중에 돌아가 버린 사람이었어요. 그 일로 바울과 바나바가 크게 다투고 갈라서기까지 했어요(행 15:37-39).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 바울은 감옥에서 이렇게 부탁해요.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 도망쳤던 사람이 다시 쓰임 받았어요. 섬기러 오신 예수님이 먼저 찾아와 주셨기 때문이에요. 그 은혜가 이 짧은 책 한 권에 가득 담겨 있어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5)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