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64

스바냐,
하나님이 노래하며
기뻐하시는 책

"진노의 날"로 시작한 예언이,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로 끝나기까지

스바냐 1–3장
여는 글

스바냐서는 성경에서 가장 무서운 말로 시작하는 책 가운데 하나예요.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1:2). 그리고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다고 외쳐요. 😮 중세 교회는 이 책의 한 구절로 "진노의 날"이라는 유명한 장송곡을 만들었을 정도예요.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정반대예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 때문에 기뻐 노래하세요.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노래하신다"고 말하는 거의 유일한 장면이에요. 숨겨 주신 이름, 거꾸로 돌아가는 창조, 진노의 날, 찌끼 위에 가라앉은 포도주, 들짐승의 굴이 된 니느웨, 깨끗한 입술, 그리고 노래하시는 하나님까지 따라가 볼게요.

1부

스바냐는 어떤 책일까?

여호와의 날을 경고하고 겸손한 남은 자를 노래한 책

스바냐는 유다 왕 요시야 시대(주전 640–609년)에 활동했어요(1:1). 그 직전 므낫세 왕이 55년 동안 다스리며 우상 숭배가 온 나라에 퍼졌고, 요시야가 개혁을 시작하기 전후로 스바냐가 외쳤어요. 스바냐서 1장에 나오는 바알 숭배, 하늘의 별 숭배, 말감 숭배는 요시야가 개혁 때 없앤 것들과 꼭 맞아요(왕하 23장). 그래서 스바냐의 예언이 요시야의 개혁에 불을 붙였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아요.

왕족 선지자?스바냐는 족보가 4대나 적혀 있어요. "히스기야의 현손"(1:1). 이 히스기야가 유다 왕 히스기야라면 스바냐는 요시야 왕의 먼 친척인 왕족이에요.
"여호와께서 숨기셨다"스바냐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숨기셨다(보호하셨다)"는 뜻이에요. 므낫세의 박해 시대에 태어나 하나님이 숨겨 지키신 아이라는 뜻으로 보는 해석도 있어요.
스바냐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여호와의 날
"여호와의 날"이라는 말이 책 전체에 되풀이돼요.
2
창조의 역전
심판이 창조 순서를 거꾸로 되돌리는 모습으로 그려져요.
3
열방의 심판
블레셋, 모압, 암몬, 구스, 앗수르까지 주변 나라들을 심판하세요.
4
겸손한 남은 자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남겨 두시겠다고 약속하세요(3:12).
5
노래하시는 하나님
마지막에 하나님이 백성 때문에 기뻐 노래하세요(3:17).

스바냐서의 마지막 고백은 성경에서 가장 따뜻한 구절 가운데 하나예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3:17). 진노의 날을 우리 대신 받으시고 우리를 그 기쁨으로 이끄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세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거꾸로 돌아가는 창조부터 노래하시는 하나님까지

1

사람, 짐승, 새, 물고기,
창조의 순서를 거꾸로 되돌리는 심판

스바냐 1:2-3 · 창세기 1:20-27

스바냐서의 첫 예언이에요.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1:2-3).

이 순서를 잘 보세요. 사람, 짐승, 새, 물고기. 😮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다섯째 날에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를, 여섯째 날에 땅의 짐승과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셨어요. 스바냐는 그 순서를 정확히 거꾸로 되짚어요. 사람부터 시작해서 물고기까지요. 마치 하나님이 창조를 한 장씩 되감는 것처럼요.

노아 홍수 때도 하나님은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셨어요(창 6:7). 죄는 사람만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창조 세계 전체를 혼돈으로 되돌려요. 스바냐는 그 무서운 결과를 보여 줘요. 그러나 하나님은 무너뜨리는 데서 멈추지 않으세요. 창조를 되감는 심판 너머에 만물을 새롭게 하실 새 창조가 있어요(고후 5:17).

돌아보기
내 죄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기억하고, 새 창조의 은혜를 구합니다.
2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된 한 구절

스바냐 1:14-18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1:14). 그리고 그날을 이렇게 묘사해요.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1:15-16). "날이요"가 숨 가쁘게 이어져요. 😮

라틴어 불가타 성경은 1:15를 "디에스 이레, 디에스 일라(진노의 날, 그날)"로 시작해요. 13세기 무렵, 이 구절로 시작하는 라틴어 찬송 「디에스 이레」가 지어졌어요. 마지막 심판의 두려움을 노래한 이 찬송은 수백 년 동안 장례 미사(레퀴엠)에 불렸어요. 모차르트와 베르디의 레퀴엠에도 이 가사로 된 웅장한 곡이 있어요. 영화 음악에서 긴장감을 줄 때 자주 쓰이는 그 무서운 선율도 이 찬송에서 왔어요.

그리고 스바냐는 덧붙여요.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1:18). 그날에는 돈도 권력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런데 「디에스 이레」 찬송은 두려움만 노래하지 않아요. 중간에 이런 기도가 있어요. "자비로우신 예수여, 기억하소서, 당신이 이 길을 걸으신 것은 나 때문이었음을". 진노의 날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 대신 그 진노를 받으신 예수님이에요(롬 5:9).

돌아보기
그날 은과 금이 나를 건지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나를 위해 진노를 받으신 예수님만 의지합니다.
3

등불을 들고 예루살렘을 뒤지시는 하나님,
찌끼 위에 가라앉은 사람들

스바냐 1:8-12 · 사무엘상 5:5

하나님은 심판받을 사람들을 하나하나 짚으세요. 그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 그 날에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1:8-9). 😮 "문턱을 뛰어넘는" 것은 블레셋의 다곤 신전 풍습과 연결돼요. 다곤 신상이 언약궤 앞에서 쓰러져 문지방에 부서진 뒤, 사람들은 그 문지방을 밟지 않았거든요(삼상 5:5). 이방 신의 풍습을 따라 하던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 나와요.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끼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1:12).

"찌끼 같이 가라앉았다"는 포도주 만드는 데서 온 말이에요. 포도주를 만들 때는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 부어 찌꺼기를 걸러야 해요. 그대로 두면 찌꺼기 위에 가라앉아 맛이 탁해지고 굳어 버려요. 😮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은 아무것도 안 하셔"라고 생각해요. 복도 화도 없다고요. 신앙이 굳어 버린 무관심이에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등불을 들고" 구석구석 찾으세요. 그 등불은 심판의 등불이면서, 동시에 잃은 드라크마를 찾으려고 등불을 켜고 집을 쓰는 여인(눅 15:8)의 마음이기도 해요.

돌아보기
"하나님은 복도 화도 내리지 않으신다"며 찌끼 위에 가라앉은 무관심한 신앙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흔들어 깨웁니다.
4

"오직 나만 있다"던 도시,
당아와 고슴도치의 집이 된 니느웨

스바냐 2:13-15 · 이사야 47:8

스바냐는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 앗수르와 그 수도 니느웨에 대해 예언해요. "니느웨를 황폐하게 하여 사막 같이 메마르게 하리니 각종 짐승이 그 가운데에 떼로 누울 것이며 당아와 고슴도치가 그 기둥 꼭대기에 깃들이고"(2:13-14). 😮 화려한 궁전 기둥 꼭대기에 새와 고슴도치가 사는 폐허가 될 거라는 거예요.

니느웨는 스스로를 이렇게 말하던 도시였어요. "마음속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더니"(2:15). 이사야서에서 바벨론도 똑같은 말을 했어요(사 47:8). 원래 이 말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말이에요.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사 45:5). 니느웨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했어요.

그리고 스바냐의 예언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주전 612년,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이 니느웨를 무너뜨렸어요. 그 도시는 정말 폐허가 되어 모래 언덕 아래 묻혔고, 2천 년 넘게 잊혔어요. 1840년대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시작하고서야 다시 세상에 드러났어요. "오직 나만 있다"던 도시가 이름조차 잊혔어요. 영원히 남는 것은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실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뿐이에요.

돌아보기
"오직 나만 있다"는 교만한 마음이 내 안에 없는지 돌아보고, 홀로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섭니다.
5

흩어진 언어를 다시 모으시는 하나님,
"깨끗한 입술"

스바냐 3:9-13 · 창세기 11:1-9 · 사도행전 2:5-11

3장에서 심판의 분위기가 확 바뀌어요.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3:9).

여기 "입술"은 히브리어로 "사파"인데, "언어"라는 뜻도 있어요. 😮 바벨탑 이야기에서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창 11:1)라고 할 때,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창 11:7)라고 하실 때 쓰인 바로 그 단어예요. 바벨에서 교만 때문에 흩어진 언어를, 하나님이 다시 깨끗하게 하셔서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바벨의 역전이에요.

그리고 그 백성의 모습이 그려져요.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3:12). 교만한 자들이 아니라 겸손한 자들이 남아요.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자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들었어요(행 2:6-11). 바벨에서 흩어진 언어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었어요. 깨끗한 입술로 함께 부르는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예요.

돌아보기
내 입술이 원망과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깨끗한 입술이 되기를 구하며, 서로 다른 이들과 한마음으로 예배합니다.
6

"딸 시온아 노래할지어다",
먼저 백성이 노래하고

스바냐 3:14-16

진노의 날로 시작한 책이 이렇게 바뀌어요.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3:14). 😊 노래하라, 기쁘게 부르라,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기쁨의 말이 네 번이나 쏟아져요.

왜 기뻐해야 할까요?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3:15). 백성이 잘해서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형벌을 치우시고, 원수를 쫓으시고, 그들 가운데 왕으로 계시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위로하세요.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3:16). 두려움에 손을 축 늘어뜨린 사람에게 다시 손을 들라는 거예요. 스가랴는 이 노래를 이어받아 이렇게 외쳐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슥 9:9). 그 왕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평화의 왕 예수님이세요.

돌아보기
형벌을 제거하시고 내 가운데 계신 왕을 생각하며, 늘어뜨린 손을 다시 들어 기쁘게 찬양합니다.
7

잠잠히 사랑하시고,
큰 소리로 노래하시는 하나님

스바냐 3:17-20

스바냐서의 절정이에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3:17).

바로 앞 절에서는 시온에게 노래하라고 했어요(3:14).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노래하세요. 😮 성경에는 사람이 하나님께 노래하는 장면은 수없이 많지만, 하나님이 사람 때문에 기뻐 노래하신다는 장면은 거의 없어요. "즐거이 부르며"는 히브리어로 큰 소리로 기뻐 외치는 노래를 뜻해요. 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를 보며 기뻐 노래하는 모습이에요(사 62:5).

그런데 그 사이에 이런 말이 있어요.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직역하면 "그의 사랑 안에서 잠잠하시며"예요. 큰 소리로 노래하시는 하나님이 동시에 잠잠히 사랑하세요. 😊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가 말없이 바라보다가, 또 노래를 불러 주는 모습 같아요. 너무 사랑해서 말이 없어지기도 하고, 너무 기뻐서 노래가 터지기도 하는 거예요. 진노의 날로 시작한 책이 하나님의 자장가로 끝나요.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이세요.

※ 3:17의 "잠잠히 사랑하시며"는 히브리어 표현이 어려워, 칠십인역처럼 "사랑으로 새롭게 하시며"로 읽는 번역도 있어요.

돌아보기
하나님이 나 때문에 노래하시고 잠잠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고, 그 사랑의 품 안에서 오늘 하루 평안히 쉽니다.
맺는 글
진노의 날로 시작해
하나님의 노래로 끝나는 책

스바냐서는 우리 죄의 심각성을 정직하게 보여 줘요. 죄는 창조 세계를 되감아 혼돈으로 돌리고, 은과 금으로도 피할 수 없는 진노의 날을 불러와요. 찌끼 위에 가라앉은 무관심한 신앙도 하나님의 등불을 피할 수 없어요.

그러나 이 책은 하나님의 노래로 끝나요. 형벌을 제거하시고, 원수를 쫓아내시고, 우리 가운데 왕으로 계시며, 우리 때문에 기뻐 노래하시는 하나님이에요. 진노의 날과 노래의 날 사이에 십자가가 서 있어요. 그 십자가에서 진노를 다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요.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3:17)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