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04

하박국서,
하나님께 따지는 선지자

"어느 때까지니이까"로 시작해
"그럴지라도"로 끝나는 믿음의 여정

하박국 1–3장
여는 글

보통 선지서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는 책이에요. 그런데 하박국서는 달라요. 선지자가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을 걸어요. 그것도 따지면서요. "하나님, 언제까지 보고만 계실 겁니까?"

그래서 하박국서는 이렇게 불리기도 해요. "하나님과의 대화록". 질문하고, 답을 듣고, 다시 따지고, 기다리고, 마침내 노래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예요.

1부

하박국서는 어떤 책일까?

질문 → 대답 → 질문 → 대답 → 찬양

하박국은 바벨론(갈대아)이 떠오르던 주전 7세기 말, 유다가 무너지기 직전에 활동했어요. 나라 안에는 불의가 가득했고, 밖에서는 더 무서운 제국이 몰려오고 있었죠. 이 책은 하박국의 두 번의 질문과 하나님의 두 번의 대답, 그리고 마지막 찬양으로 짜여 있어요.

이름의 뜻하박국은 "껴안다"와 관련된 이름으로 봐요. 루터는 그를 "하나님을 끌어안고 매달린 사람"으로 풀었어요.
책의 흐름1장 두 번의 따짐 → 2장 하나님의 대답 → 3장 기도와 찬양
하박국서의 흐름 다섯 단계
1
첫 번째 따짐 (1:2-4)
"어느 때까지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십니까? 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2
첫 번째 대답 (1:5-11)
"내가 바벨론을 일으켜 유다를 심판하겠다." 대답이 질문보다 더 충격적이에요.
3
두 번째 따짐 (1:12-2:1)
"아니, 더 악한 바벨론을 쓰신다고요? 그게 공정합니까?" 그리고 파수대에 올라가 기다려요.
4
두 번째 대답 (2:2-20)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리고 바벨론을 향한 다섯 번의 "화 있을진저".
5
기도와 찬양 (3장)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하박국은 "그럴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즐거워하리라"고 노래해요.

하박국서의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 따지는 것을 성경이 막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박국은 하나님을 떠나서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불평했어요. 그리고 그 정직한 씨름의 끝에서 누구보다 깊은 믿음의 고백에 도착했어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대화 속에 숨은 반전, 그리고 교회 역사를 바꾼 한 구절

1

백성에게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따지는 선지자

하박국 1:2-4

하박국서의 첫마디는 이거예요.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1:2). 히브리어로 아드 아나, "언제까지요?"라는 말은 시편의 탄식시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에요.

다른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로 시작하는데, 하박국은 "하나님, 왜 가만히 계세요?"로 시작해요. 폭력과 불의가 가득한데 왜 보고만 계시냐고요. 선지자가 백성 대신 하나님을 향해 설교하는 셈이에요. 😄

그런데 하나님은 이 질문을 꾸짖지 않으세요. 오히려 대답해 주세요. 하박국서는 정직한 질문이 믿음의 반대가 아니라, 믿음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줘요.

돌아보기
마음속에 담아둔 "하나님, 왜요?"라는 질문을 하나님을 떠나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갑니다.
2

질문보다 더 황당한
하나님의 대답

하박국 1:5-6 · 사도행전 13:41
하박국의 기대
"유다의 악인들을 벌해 주세요, 정의를 세워 주세요"
VS
하나님의 대답
"내가 더 사납고 빠른 바벨론을 일으켜 유다를 치게 하겠다"

하박국은 유다 안의 불의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 너희를 치겠다"였어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운 바벨론을요(1:8).

하나님도 이 대답이 믿기 어렵다는 걸 아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시작하세요.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1:5).

이 구절은 약 600년 뒤 바울의 설교에 다시 등장해요.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 뒤 이 구절을 인용하며 경고해요(행 13:41).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하신다는 걸, 가장 놀라운 방식인 십자가와 부활로 보여주신 거예요.

돌아보기
내가 기대한 방식과 다르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그래도 신뢰할 수 있는지 돌아봅니다.
3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 고대의 광고판

하박국 2:1-3

두 번째로 따진 하박국은 이렇게 말해요.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 그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2:1). 따지고 끝내는 게 아니라, 성벽 위 망대에 올라가 대답을 기다려요.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2:2). 크게, 분명하게, 지나가는 사람도 한눈에 읽을 수 있게 쓰라는 거예요. 말하자면 고대의 고속도로 광고판이에요. 😄

그리고 덧붙이세요.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2:3). 하나님의 대답은 늦어 보여도 늦지 않아요.

돌아보기
기도하고 나서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파수꾼처럼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4

율법 613개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하박국 2:4 · 로마서 1:17 · 갈라디아서 3:11 · 히브리서 10:38

하박국 2:4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구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구절 중 하나예요. 신약에서 세 번이나 인용되고(롬 1:17, 갈 3:11, 히 10:38), 16세기에 마르틴 루터가 이 말씀을 붙잡으면서 종교개혁의 불씨가 됐어요.

그런데 유대인들도 이 구절을 특별하게 여겼어요. 유대 문헌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모세가 받은 계명은 613개였는데, 다윗은 이것을 11개로(시 15편), 이사야는 6개로(사 33:15), 미가는 3개로(미 6:8), 이사야는 다시 2개로(사 56:1) 줄였고, 마지막으로 하박국이 단 1개로 줄였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유대 랍비들조차 율법 전체의 핵심을 "믿음"이라는 한 단어에서 찾았던 거예요. 앞에서 본 미가 6:8도 이 목록에 들어 있다는 게 재밌어요.

※ 탈무드 마코트 23b-24a에 나오는 랍비 심라이의 설명입니다.

돌아보기
수많은 신앙의 규칙보다 먼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그 한 가지를 붙잡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5

말 못하는 우상,
잠잠해야 할 온 땅

하박국 2:18-20
우상 앞에서
나무에게 "깨라", 돌에게 "일어나라" 말하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VS
하나님 앞에서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 사람이 입을 다문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향해 다섯 번 "화 있을진저"를 선포하세요(2:6-20). 약탈, 탐욕, 폭력, 술 취함…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화는 우상 숭배예요.

"나무에게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2:19). 사람들은 말을 걸고 소리쳐도, 우상은 한마디도 못 해요. 금과 은으로 입혔지만 그 안에는 생기가 전혀 없어요.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서 장면이 확 뒤집혀요.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2:20). 우상 앞에서는 사람이 떠들고 우상이 잠잠한데, 하나님 앞에서는 온 땅이 잠잠해요. 누가 진짜 살아 있는 신인지 침묵이 말해줘요.

돌아보기
오늘 하나님 앞에서 내 말을 멈추고, 잠잠히 그분의 음성을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6

선지서 안에 들어 있는
찬양 악보

하박국 3:1, 3, 9, 13, 19

하박국 3장은 선지서 가운데 아주 특별한 장이에요. 시편처럼 음악 지시어가 붙어 있는 노래이기 때문이에요.

시작은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3:1)예요. "시기오놋"은 음악 양식이나 곡조를 가리키는 말로 보이는데, 시편 7편 제목에 나오는 "식가욘"과 같은 계열이에요. 중간중간 시편처럼 "셀라"가 세 번 나오고(3:3, 9, 13), 마지막 절은 이렇게 끝나요.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3:19).

즉 하박국 3장은 성전 예배에서 실제로 불렀을 가능성이 있는 찬양곡이에요. 하나님께 따지던 선지자가 결국 예배 인도자의 자리에서 노래로 책을 마친 거예요.

돌아보기
내 탄식과 질문도 결국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바뀔 수 있음을 믿으며 노래합니다.
7

"어느 때까지"에서
"그럴지라도"까지

하박국 1:2 · 3:17-19
책의 첫 고백 (1:2)
"어느 때까지리이까" — 상황이 바뀌기를 요구한다
VS
책의 마지막 고백 (3:17-18)
"그럴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 상황은 그대로, 사람이 바뀌었다

하박국 3:17을 천천히 세어 보면, 여섯 가지를 잃어요.

1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2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3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4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5우리에 양이 없으며
6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농경 사회에서 이건 생계 전부가 무너진 상황이에요. 그런데 하박국은 바로 그 자리에서 기뻐하겠다고 노래해요. 1장에서 "언제까지요?"라고 따지던 사람이, 3장에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그럴지라도"라고 고백해요.

하박국서에서 바뀐 것은 상황이 아니라 하박국 자신이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사슴 발 같게 하사 높은 곳으로 다니게"(3:19) 하세요. 험한 바위산도 가볍게 뛰어다니는 사슴처럼요.

돌아보기
오늘 내 삶에서 "없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고, 그 끝에 "그럴지라도"라고 고백해 봅니다.
맺는 글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사람은 바뀔 수 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따졌고, 기다렸고, 들었고, 마침내 노래했어요. 하나님은 그의 질문을 막지 않으셨고, 그 질문을 믿음의 길로 바꾸셨어요.

오늘 "어느 때까지"라고 묻는 분이 있다면, 하박국서는 그 질문의 끝에 이런 고백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줘요.

"그럴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3:18)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