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03

나훔서,
요나서의 속편

회개했던 니느웨, 100년 뒤 다시 돌아온 이야기
그리고 "위로"라는 이름의 선지자

나훔 1–3장
여는 글

요나서를 읽고 나면 궁금해지는 게 있어요. "그래서 니느웨는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 그 대답이 바로 나훔서예요. 나훔서는 세 장 전체가 오직 한 도시, 니느웨를 향한 말씀이에요.

요나서가 원수를 아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줬다면, 나훔서는 그 긍휼을 짓밟은 도시에 임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줘요. 두 책을 나란히 놓으면 놀라운 짝이 보여요.

1부

나훔서는 어떤 책일까?

요나서와 나란히 읽어야 보이는 책

나훔서는 요나 시대로부터 약 100년 뒤, 이집트의 도시 테베(노아몬)가 무너진 주전 663년과 니느웨가 멸망한 주전 612년 사이에 기록되었어요. 그 사이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주전 722년), 유다까지 짓누르며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제국이 되어 있었어요.

이름의 뜻나훔은 "위로"라는 뜻이에요. 원수의 멸망이 고통받던 유다에게는 위로가 되었어요.
고향엘고스 사람(1:1)이라고만 나오고,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아요.
나훔서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한 도시만을 향한 책
다른 선지서들이 여러 나라를 다루는 것과 달리, 나훔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니느웨만 다뤄요.
2
시로 쓴 심판
1장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부분적으로 따르는 시(부분 답관체)로 되어 있다는 견해가 많아요.
3
생생한 전쟁 장면
붉은 방패, 번쩍이는 병거, 거리를 달리는 말들까지, 성경에서 가장 영화 같은 전투 묘사가 나와요(2:3-4, 3:2-3).
4
유다를 향한 좋은 소식
"좋은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1:15)는 이사야 52:7, 로마서 10:15와 이어져요.
5
질문으로 끝나는 책
요나서처럼 나훔서도 질문으로 끝나요. 그런데 그 질문의 내용은 정반대예요.

나훔서는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는 말이 "영원히 노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님을 보여줘요. 한 세대의 회개는 다음 세대의 면죄부가 아니에요. 요나서와 나훔서는 함께 읽을 때, 긍휼과 공의가 모두 하나님의 진짜 얼굴이라는 걸 보여줘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요나서와 짝을 이루는 장면들, 그리고 역사가 증언하는 이야기

1

같은 신앙고백,
요나는 앞 절반 나훔은 뒤 절반

출애굽기 34:6-7 · 요나 4:2 · 나훔 1:3
요나 4:2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 니느웨는 용서받는다
VS
나훔 1:3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 니느웨는 심판받는다

출애굽기 34:6-7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 들려주신 하나님 자신에 대한 소개예요. 앞부분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가 많은" 하나님, 뒷부분은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는" 하나님이에요.

요나는 이 고백의 앞 절반을 인용해 니느웨의 용서에 불평했어요. 그리고 나훔은 같은 고백의 뒤 절반을 인용해 니느웨의 심판을 선포해요. 같은 도시, 같은 하나님, 같은 신앙고백인데, 회개한 도시에는 긍휼이, 다시 악해진 도시에는 공의가 임한 거예요.

돌아보기
하나님의 "노하기를 더디 하심"을 "괜찮다"는 뜻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2

성경에서 질문으로 끝나는
단 두 권의 책

요나 4:11 · 나훔 3:19
요나서의 마지막 질문
"내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아끼는 것이 어찌 옳지 아니하냐" — 긍휼의 질문
VS
나훔서의 마지막 질문
"네 악이 항상 누구에게 미치지 아니하였느냐" — 심판의 질문

성경 66권 가운데 질문으로 끝나는 책은 요나서와 나훔서, 딱 두 권이에요. 그리고 두 책은 모두 니느웨에 대한 책이에요.

요나서의 마지막 질문은 "내가 니느웨를 아끼는 것이 옳지 않으냐"였어요. 나훔서의 마지막 질문은 "네 잔인함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었느냐"예요. 나훔서는 이렇게 끝나요. 니느웨가 무너진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손뼉을 친다고요(3:19).

한 도시를 두고 하나님이 던지신 두 개의 질문. 하나는 "내가 너를 아낀다"였고, 하나는 "네가 모두를 아프게 했다"였어요. 그 사이의 100년 동안 니느웨가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두 질문을 갈라놓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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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한 뒤, 나는 그 은혜에 합당한 길을 계속 걷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3

"네가 노아몬보다 나으냐"
— 자기가 부순 도시를 거울로

나훔 3:8-10

나훔 3:8에서 하나님은 니느웨에게 묻으세요.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노아몬은 이집트의 위대한 도시 테베예요. 나일강이 둘러싼 난공불락의 도시였고, 에디오피아와 애굽이 힘이 되어 주던 곳이었죠.

그런데 이 노아몬을 무너뜨린 게 누구였을까요? 바로 앗수르예요. 주전 663년 앗수르 왕 아슈르바니팔이 테베를 약탈했어요. 나훔은 니느웨에게 "네가 직접 부순 그 도시를 봐라. 너도 그렇게 된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무너뜨리던 자가 무너지고, 포로로 끌고 가던 자가 끌려가는 반전. 니느웨는 자기가 한 일을 그대로 돌려받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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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른 사람에게 한 말과 행동이 언젠가 나에게 돌아올 거울이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4

사자 사냥을 자랑하던 왕들에게
"사자 굴이 어디냐"

나훔 2:11-13

앗수르 왕들은 사자 사냥을 자기 힘의 상징으로 여겼어요. 니느웨의 궁전에서 발굴된 벽 부조에는 아슈르바니팔 왕이 사자를 사냥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는데, 지금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볼 수 있어요. 앗수르는 스스로를 사자처럼 여기며, 먹이를 찢어 새끼에게 먹이는 제국이었어요.

그런데 나훔은 바로 그 이미지로 조롱해요.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젊은 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2:11). 사냥꾼을 자처하던 제국이 이제 사냥당하는 쪽이 된 거예요. 그들이 가장 자랑하던 상징이 그들의 몰락을 알리는 노래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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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자랑하는 힘이 오히려 나를 무너뜨리는 약점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5

"강들의 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나훔 1:8 · 2:6

나훔은 니느웨가 "넘치는 물로"(1:8) 진멸될 것이라고, 그리고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2:6)라고 예언했어요. 니느웨는 티그리스강 옆에 있었고, 여러 수로와 운하로 둘러싸인 도시였어요.

흥미롭게도 고대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는 니느웨 포위전 때 큰 홍수가 나서 강물이 성벽 일부를 무너뜨렸고, 그 틈으로 적군이 들어갔다는 기록을 남겼어요. 불에 탄 흔적과 함께, 물에 의한 파괴를 암시하는 고고학 자료를 제시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 디오도로스의 기록은 후대의 전승이라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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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성벽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순간에 열릴 수 있음을 기억합니다.
6

이름조차 잊혀진
세계 최대의 도시

나훔 1:14 · 3:7

나훔은 이렇게 예언했어요.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1:14). 당시 니느웨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도시 중 하나였어요. 그 이름이 잊힌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죠.

그런데 니느웨가 무너진 지 약 200년 뒤, 그리스 장군 크세노폰이 1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바로 그 자리를 지나갔어요. 그는 거대한 폐허를 보고 기록을 남겼지만, 그곳이 니느웨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어요. 니느웨는 그 뒤로 2천 년 넘게 흙더미 아래 묻혀 있다가, 1840년대에 영국 고고학자들의 발굴로 다시 세상에 드러났어요.

돌아보기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자랑하는 것들 앞에서, 영원히 남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임을 기억합니다.
7

심판의 책에 붙은
"위로"라는 이름

나훔 1:1, 7, 15

이 책을 쓴 선지자의 이름 나훔은 "위로"라는 뜻이에요. 온통 심판의 말씀으로 가득한 책의 저자 이름이 "위로"라니, 좀 이상하게 느껴지죠.

하지만 앗수르에게 짓밟히던 유다 사람들에게 이 책은 정말 위로였어요.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1:7), 그리고 "좋은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1:15). 이 구절은 이사야를 거쳐 바울에게까지 이어져, 복음 전하는 자의 아름다운 발을 노래하는 말씀이 돼요(롬 10:15).

그리고 또 하나. 예수님이 갈릴리 사역의 중심으로 삼으신 마을 가버나움은 히브리어로 "크파르 나훔", 곧 "나훔의 마을"이라는 뜻이에요. "위로의 마을"에서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죄인을 용서하시며 진짜 위로를 전하셨어요.

※ 가버나움이 선지자 나훔의 이름에서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이름이 같다는 데서 오는 묵상적 연결입니다.

돌아보기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환난 날의 산성"이라는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맺는 글
긍휼과 공의는
모두 하나님의 진짜 얼굴이다

요나서는 원수까지 아끼시는 하나님을 보여줬고, 나훔서는 끝까지 악을 선택한 자를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여줘요. 두 책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서로를 완성해요.

그리고 이 두 얼굴이 가장 완전하게 만나는 곳이 십자가예요. 죄는 심판받고, 죄인은 용서받는 자리.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1:7)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