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62

아모스,
뽕나무 가꾸던 목자가
외친 정의

선지자 학교도 다니지 않은 시골 목자가,
부자들의 상아 침대 앞에서 "정의를 물 같이" 외치다

아모스 1–9장
여는 글

아모스는 직업 선지자가 아니었어요. 남쪽 유다의 시골 마을 드고아에서 양을 치고 뽕나무를 가꾸던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북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 벧엘로 가서 외쳐요. 😮 북쪽 사람들에게는 남쪽 시골에서 올라온 촌사람이 자기들 왕과 부자들을 꾸짖는 셈이었어요.

아모스 시대의 북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최고의 전성기였어요. 그런데 부자들은 상아 침대에 누워 포도주를 마시고, 가난한 사람들은 신발 한 켤레 값에 종으로 팔려 갔어요. 아모스는 화려한 예배보다 정의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외쳐요. 서너 가지 죄의 올가미, 신 한 켤레, 바산의 암소들, 물 같은 정의, 여름 실과 광주리, 말씀의 기근, 그리고 무너진 다윗의 장막까지 따라가 볼게요.

1부

아모스는 어떤 책일까?

번영 속에 썩어 가던 나라에 정의를 외친 책

아모스는 주전 760년 무렵, 유다 왕 웃시야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했어요(1:1). 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의 영토를 솔로몬 시대만큼 넓혔고, 나라는 부유했어요. 하지만 그 부는 소수에게 몰렸고, 재판은 뇌물로 굽었고, 예배는 화려했지만 하나님은 없었어요.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라고 하자, 아모스는 대답해요.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7:12-15).

"지진 전 이 년에"아모스서는 "지진 전 이 년에" 받은 말씀이라고 소개돼요(1:1). 하솔 등 북이스라엘 여러 유적에서 주전 760년 무렵의 큰 지진 흔적이 발견되었고, 250년 뒤 스가랴도 "웃시야 때 지진"을 기억해요(슥 14:5).
뽕나무 배양자아모스가 가꾼 "뽕나무"는 돌무화과나무예요. 열매가 익기 전에 하나하나 칼집을 내 주어야 달게 익는 나무로,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열매였어요.
아모스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열방에서 이스라엘로
이웃 나라들의 죄를 차례로 꾸짖다가 마지막에 이스라엘을 겨눠요.
2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여덟 나라를 같은 형식의 말로 꾸짖는 정교한 구조예요.
3
사회 정의
가난한 사람을 짓밟는 부자와 재판관을 날카롭게 고발해요.
4
다섯 가지 환상
메뚜기, 불, 다림줄, 여름 실과, 제단 곁의 주님 환상이 이어져요(7–9장).
5
다윗 장막의 회복
책 마지막은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약속이에요.

아모스서의 중심에는 이 외침이 있어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를지어다"(5:24).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워싱턴 대행진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에서 이 구절을 인용했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는 마침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눅 4:18)에게서 이루어져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서너 가지 죄의 올가미부터 무너진 다윗의 장막까지

1

박수 치며 듣던 청중이
마지막에 걸려든 올가미

아모스 1:3-2:16

아모스의 첫 설교는 정말 영리하게 짜여 있어요. 벧엘에 모인 북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먼저 원수의 나라들을 꾸짖어요.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1:3). 북쪽의 아람이에요. 청중은 "옳소!" 했을 거예요. 😄

이어서 가사(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 모압을 차례로 꾸짖어요. 모두 이스라엘을 괴롭힌 이웃 나라들이에요. 청중의 박수 소리가 점점 커졌겠지요. 그리고 일곱째로 남쪽 유다를 꾸짖어요.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2:4). 북쪽 사람들은 남쪽 경쟁자가 혼나는 걸 보며 더 신났을 거예요. 일곱은 완전수니까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아모스가 여덟 번째를 외쳐요.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2:6). 😮

청중은 자기도 모르게 올가미 안으로 들어와 있었어요. 지도 위에서 보면 아모스는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을 빙 돌며 꾸짖다가, 마지막에 한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겨눈 거예요.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고발이 가장 길고 자세해요. 남의 죄에 박수 치던 사람이 결국 자기 죄 앞에 서게 돼요. 하나님의 말씀은 남이 아니라 나를 먼저 비추는 거울이에요.

돌아보기
다른 사람의 죄에 박수 치며 고개를 끄덕일 때, 그 말씀이 결국 나를 향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2

은을 받고 의인을 팔고,
"신 한 켤레"에 가난한 자를 판다

아모스 2:6-8 · 8:4-6

이스라엘의 첫 번째 죄목이 이거예요.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2:6). 😢 빚을 갚지 못한 가난한 사람을 종으로 팔아넘기는데, 그 값이 겨우 신발 한 켤레였어요. 사람 목숨이 신발 한 켤레 값이 된 거예요.

"신"이 왜 나왔을까요?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땅을 사고팔 때 신발을 벗어 건네는 관습이 있었어요(룻 4:7).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 말이 가난한 사람의 땅을 헐값에 빼앗는 거래를 가리킨다고도 봐요. 어느 쪽이든 아주 작은 이익을 위해 가난한 사람을 짓밟았다는 뜻이에요.

8장에서는 장사꾼들의 속마음이 나와요.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까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8:5). 😮 안식일에 예배드리면서 속으로는 언제 끝나나 시계만 보고 있었어요. 곡식 재는 그릇은 작게, 돈 다는 추는 크게 속였어요. 그리고 다시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8:6).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의 신발 한 켤레까지 기억하시는 분이에요.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어요(마 25:40).

돌아보기
내 작은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신발 한 켤레 값처럼 가볍게 여기지 않았는지, 예배 시간에 마음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3

"바산의 암소들아",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발굴된 상아 조각들

아모스 3:15 · 4:1-3 · 6:4-6

아모스는 사마리아의 부유한 여인들을 이렇게 불러요.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4:1). 😄 바산은 요단 동쪽의 비옥한 목초지로, 거기 소들은 살이 오르기로 유명했어요. 시골 목자다운 아주 직설적인 표현이에요.

6장에서는 부자들의 생활이 그려져요.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6:4-6). 3:15에는 "상아 궁"도 나와요.

그런데 1930년대 사마리아 유적을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이 놀라운 것을 찾아냈어요. 수백 조각의 상아 장식이었어요. 가구와 벽에 붙였던 정교한 조각들로, 아모스가 말한 "상아 상", "상아 궁"이 실제였음을 보여 줘요. 지금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등에 전시되어 있어요. 아모스가 꾸짖은 것은 부유함 자체가 아니라 "요셉의 환난", 곧 무너져 가는 형제들의 아픔에 무관심한 마음이었어요. 이웃의 아픔에 무감각해진 풍요가 가장 큰 가난이에요.

돌아보기
내가 누리는 편안함 속에서 이웃의 환난에 무관심해지지 않도록, 상아 침대에서 일어나 형제의 아픔을 돌아봅니다.
4

"너희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정의를 물 같이 흐르게 하라

아모스 5:21-24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의 예배는 성대했어요. 절기도 지키고, 번제도 드리고, 비파 소리에 맞춰 노래도 불렀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5:21-23). 😮

찬양 사역자에게는 정말 무서운 구절이에요. 하나님이 노랫소리를 그치라고 하신 이유는 노래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어요. 예배당 밖에서 가난한 사람이 짓밟히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세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를지어다"(5:24).

이스라엘 땅에는 비가 올 때만 잠깐 물이 흐르고 금세 말라 버리는 골짜기(와디)가 많아요. 아모스는 그런 반짝 정의가 아니라,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강 같은 정의를 원하셨다는 거예요.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워싱턴 링컨 기념관 앞에서 "정의가 물 같이 흘러내릴 때까지 우리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구절을 인용했어요. 미국 앨라배마의 민권 기념비에도 이 말씀이 새겨져 있어요. 예배와 삶이 하나 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노래를 기뻐하세요.

돌아보기
주일의 찬양이 월요일의 정의로 이어지도록, 내 예배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삶으로 흐르기를 구합니다.
5

"여름 실과 한 광주리"와
"끝이 이르렀다"는 말놀이

아모스 8:1-3

7–9장에서 아모스는 다섯 가지 환상을 봐요. 그 가운데 네 번째 환상이 재밌어요. 하나님이 물으세요.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아모스가 대답해요.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8:2). 늦여름에 거둔 잘 익은 무화과 같은 과일 바구니예요. 😊 평화로운 그림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이 무서워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8:2). 과일 바구니와 끝이 무슨 상관일까요? 히브리어로 들으면 바로 알 수 있어요. "여름 과일"은 카이츠, "끝"은 "케츠"예요. 😮 거의 같은 소리예요.

추수의 마지막에 거두는 여름 과일처럼, 이스라엘의 시간도 끝에 이르렀다는 거예요. 잘 익은 과일은 곧 썩어요. 겉으로는 풍성해 보이는 이스라엘이 사실은 썩기 직전의 과일이었어요. 예레미야의 살구나무 말놀이처럼, 하나님은 평범한 일상의 물건 속에 말씀을 담으셨어요. 이 경고 뒤 약 40년 만에 북이스라엘은 무너져요. 하나님은 끝이 오기 전에 먼저 경고하시는 분, 심판보다 회개를 원하시는 분이세요(벧후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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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평범한 것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 삶이 겉만 익고 속은 썩어 가는 과일이 되지 않도록 돌아봅니다.
6

떡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

아모스 8:11-12

아모스는 앞으로 올 가장 무서운 기근을 예고해요.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8:11).

😮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뭄과 기근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았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기근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지는 기근이요. 그리고 이렇게 이어져요. "사람들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8:12).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 아모스의 말을 듣기 싫어했어요.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를 쫓아냈어요(7:12-13). 지금은 말씀이 넘치는데 듣지 않고, 나중에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게 된다는 거예요. 성경이 가장 흔한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들리는 경고예요. 그리고 하나님은 마침내 말씀의 기근을 끝내셨어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요 1:14)로요.

돌아보기
말씀이 넘치는 시대에 말씀에 무뎌지지 않도록, 오늘 주신 말씀을 귀하게 듣고 순종합니다.
7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리니,
예루살렘 회의에서 인용된 마지막 약속

아모스 9:11-15 · 사도행전 15:13-18

아홉 장 내내 심판을 외치던 아모스서가 마지막에 갑자기 회복을 노래해요.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9:11). 다윗 왕조가 초라한 천막처럼 무너지겠지만, 하나님이 다시 세우시겠다는 약속이에요.

그리고 풍요로운 그림이 이어져요.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9:13). 😄 추수가 너무 많아서 거두는 사람이 다 거두기도 전에 다음 씨 뿌리는 사람이 뒤따라온다는 거예요.

이 약속이 신약에서 놀라운 자리에 인용돼요.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신자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회의를 열었을 때(행 15장),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일어나 이 아모스서 말씀을 인용해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행 15:16-17). 야고보는 헬라어 칠십인역을 따라 인용했는데, 거기에는 "에돔"이 "사람들"로 읽혀 있어요. 그래서 다윗의 장막이 다시 세워질 때 이방인들도 들어오게 된다는 거예요.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신 분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장막 안에 우리 이방인도 들어가게 되었어요.

※ 9:12의 히브리어 본문은 "에돔의 남은 자"인데, 칠십인역은 비슷한 글자를 "사람들(아담)"로 읽었어요.

돌아보기
무너진 것 같은 내 삶과 교회를 하나님이 다시 세우실 것을 믿고, 그 장막에 더 많은 사람을 초대합니다.
맺는 글
정의가 물 같이 흐르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아모스는 화려한 예배와 넘치는 부 속에 감춰진 나라의 병을 정확히 진단했어요. 가난한 사람이 신발 한 켤레 값에 팔리고, 저울이 속이고, 재판이 뇌물에 굽어지는데 예배당에서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하나님은 그 노래를 그치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아모스서는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약속으로 끝나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는 사람의 힘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마침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러 오신 분이 그 정의를 이루셨어요. 정의와 공의의 왕 예수 그리스도세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를지어다" (5:24)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