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35

레위기,
통독이 멈추는 자리에
놓인 초대장

제사와 피와 규정뿐인 줄 알았는데,
첫 단어부터 “부르시고”로 시작하는 책

레위기 1–27장
여는 글

새해에 성경 일독을 결심한 분들이 가장 많이 멈추는 곳이 어디일까요? 창세기는 재밌고, 출애굽기도 바다가 갈라질 때까지는 신나요. 그런데 레위기에 들어서면 번제, 소제, 기름, 콩팥, 피부병, 곰팡이가 이어지지요. 그래서 레위기를 “통독 결심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분도 있어요. 😄

그런데 레위기는 알고 보면 가장 따뜻한 단어로 시작해요.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죄 있는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어떻게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초대장이에요. 들어가지 못한 모세를 부르신 첫 장면, 비둘기 두 마리에 담긴 예수님의 가난, 같은 불이 받기도 하고 삼키기도 한 날, 베드로의 환상, “희생양”이라는 말의 출생지, 예수님이 고르신 둘째 계명, 그리고 대속죄일에 울린 희년의 나팔까지 따라가 볼게요.

1부

레위기는 어떤 책일까?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 그리고 거룩하게 사는 길

레위기는 모세오경의 세 번째 책이에요. 교회는 전통적으로 모세가 기록했다고 받아 왔어요. 출애굽기 마지막에 성막이 세워진 날이 출애굽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루”(출 40:17)였고, 민수기는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민 1:1)에 시작해요. 그러니까 레위기는 이스라엘이 시내산 앞에 머문 약 한 달 사이에 받은 말씀이에요.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오셔서 성막에 머무시게 되었는데, 이제 문제가 생겼어요. 죄 많은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한 동네에서 살 수 있을까요? 레위기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에요.

이름의 뜻히브리어 이름은 첫 단어 “바이크라”, 곧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예요. “레위기(Leviticus)”는 칠십인역과 라틴어 성경에서 온 이름으로 “레위인에 관한 책”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정작 “레위인”이라는 말은 25:32-33에만 나와요. 😄 실제 주인공은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이에요.
두 개의 큰 길1–16장은 “가까이 나아가는 길”(제사, 제사장, 정결, 대속죄일), 17–27장은 “거룩하게 사는 길”이에요. 뒷부분은 “거룩하라”는 말이 거듭 나와서 학자들이 “성결법”이라고 불러요. 한가운데 16장, 대속죄일이 있어요.

※ 레위기는 모세오경 다섯 권의 한가운데 책이에요. 유대 전통(탈무드)은 토라 전체의 한가운데 글자가 레위기 11:42에 있다고 보고, 히브리어 사본에는 그 글자를 크게 써서 표시해 왔어요. 글자 수를 세는 방식에 따라 실제 가운데는 조금 달라질 수 있어요.

레위기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거의 모두 하나님의 직접 말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가 책 전체에 되풀이돼요. 이야기는 거의 없고 말씀이 가득해요.
2
다섯 가지 제사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1–7장). 감사도, 사귐도, 용서도 제사로 나아갔어요.
3
“거룩”의 책
“거룩”이라는 말이 성경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책으로 꼽혀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
4
정결과 부정
음식, 피부병, 출산, 곰팡이까지. 일상 전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걸 가르쳐요.
5
하나님의 달력
안식일, 일곱 절기(23장), 안식년과 희년(25장). 시간까지 하나님께 드려요.

레위기의 중심에는 이 말씀이 있어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17:11). 히브리서는 이 원리를 이렇게 정리해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그리고 레위기의 수많은 제사가 가리키던 한 제사를 말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요(히 10:10).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들어가지 못한 모세에서 희년의 나팔까지

1

들어가지 못한 모세를
하나님이 먼저 부르셨다

출애굽기 40:34-35 · 레위기 1:1-2 · 히브리서 10:19-22
출애굽기 끝부분
영광이 가득하여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출 40:35)
VS
레위기 첫 절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1:1)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이어서 읽으면 멋진 장면이 보여요. 출애굽기는 끝부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해서 모세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장면을 보여 줘요. 그런데 레위기는 바로 그 회막 안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사람이 문 앞에서 멈춰 섰을 때, 안에서 먼저 이름을 부르신 거예요.

레위기의 히브리어 제목이 바로 이 첫 단어 바이크라,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예요. 이어서 하나님은 사람이 어떻게 가까이 나아올 수 있는지 하나하나 알려 주세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1:2). 레위기의 모든 제사 규정은 “가까이 오지 마라”가 아니라 “이렇게 가까이 오라”는 설명서예요.

재밌는 전통이 하나 있어요. 유대인들은 옛날에 아이들이 토라 공부를 시작할 때 창세기가 아니라 레위기부터 가르쳤다고 해요. “깨끗한 아이들은 깨끗한 것(제사)부터 배우게 하라”는 이유였어요. 어른들은 통독하다 멈추는 책을 아이들은 첫 교과서로 읽은 셈이에요. 😄 그리고 히브리서는 레위기의 이 초대가 어디서 완성되는지 말해요. 예수님의 피로 “새로운 살 길”이 열렸으니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자고요(히 10:19-22).

※ 작게 쓴 알레프를 두고 유대 전통은 모세가 자신을 낮추려 했다는 해석을 전해요. 아이들이 레위기부터 배웠다는 이야기는 미드라시(레위기 랍바 7:3)에 나오는 전승이에요. 둘 다 본문 밖의 이야기로 참고만 해 주세요.

돌아보기
내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자리에서 먼저 내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수님이 열어 주신 길로 나아갑니다.
2

“제물”은 뇌물이 아니라 “가까이 감”,
그리고 비둘기 두 마리의 비밀

레위기 1:2-4, 14 · 5:7, 11 · 12:8 · 마가복음 7:11 · 누가복음 2:22-24 · 고린도후서 8:9

레위기에 계속 나오는 “예물, 제물”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코르반이에요. “가까이 가다”라는 동사에서 온 말이에요. 제사는 신을 달래려고 바치는 뇌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었어요. 예수님도 이 단어를 그대로 쓰셨어요. 부모께 드릴 것을 “고르반”이라고 핑계 대며 효도를 피하던 사람들을 꾸짖으실 때예요(막 7:11). 가까이 가는 예물을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핑계로 쓴 거지요.

번제를 드리는 사람은 먼저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었어요.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속죄가 될 것이라”(1:4). 내 자리에 이 짐승이 선다는 표시예요. 그리고 레위기는 가난한 사람을 잊지 않아요. 양을 드릴 형편이 안 되면 산비둘기 두 마리를, 그것도 어려우면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 오늘날로 약 2리터 남짓한 밀가루를 드릴 수 있었어요(5:7, 11). 가난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없게 하신 거예요.

이 규정이 신약에서 뜻밖의 장면에 나와요. 아기를 낳은 여인은 정결 기간이 끝나면 어린 양과 비둘기를 드려야 했는데, 형편이 안 되면 비둘기 두 마리를 드렸어요(12:8).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데려갔을 때 드린 예물이 바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집비둘기 둘”이었어요(눅 2:24). 양 한 마리 드릴 형편도 안 되는 집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날 성전에 들어간 그 아기가 바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어요.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으니”(고후 8:9).

※ 에바의 부피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추정해요. 여기서는 약 22리터로 보고 계산했어요.

돌아보기
내 형편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난한 자리에 오셔서 길이 되신 예수님을 따라 가까이 갑니다.
3

제물을 받으신 불과
제사장을 삼킨 불은 같은 불이었다

레위기 9:23-24 · 10:1-3, 8-10 · 히브리서 12:28-29
레위기 9: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르니”
VS
레위기 10: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레위기 9장은 첫 제사가 드려지는 날이에요. 아론이 제사를 마치고 백성을 축복하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살라요. 온 백성이 소리 지르며 엎드렸어요(9:24).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예배 장면이에요. 그런데 페이지를 한 장 넘기면 분위기가 뒤집혀요.

바로 그날,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자 향로에 불을 담아 드려요. 성경은 그것을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10:1)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9:24와 글자 하나 다르지 않은 말이 이어져요.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나온 같은 불이 한 번은 제물을 받았고, 한 번은 제사장을 삼켰어요. 하나님은 말씀하세요.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가 거룩하다 함을 받겠고”(10:3). 아버지 아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아론이 잠잠하니.”

이 장면은 레위기가 왜 그렇게 꼼꼼한지 알려 줘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사람이 좋아 보이는 대로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거예요. 거룩한 불은 장난감이 아니거든요. 히브리서도 같은 말을 해요.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9). 그 불 앞에 우리가 설 수 있는 건 우리가 만든 불 덕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단 하나의 제물, 예수 그리스도 덕분이에요.

※ 이 사건 바로 뒤에 제사장은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명령이 나와요(10:9). 그래서 유대 전승 가운데는 두 사람이 술에 취해 있었다고 보는 해석이 있어요. 본문이 직접 말하지는 않아요.

돌아보기
내 방식대로 만든 “다른 불”이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 주신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 경외함으로 예배합니다.
4

레위기의 음식 규정은
지붕 위 베드로의 환상으로 이어졌다

레위기 11:44-47 · 20:24-26 · 마가복음 7:19 · 사도행전 10:9-16, 28 · 베드로전서 1:15-16

레위기 11장은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을 수 없는 짐승의 목록이에요.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은 먹고, 돼지는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못 해서 안 돼요. 물고기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 해요. 😄 왜 이런 규정을 주셨을까요? 레위기가 직접 이유를 말해요.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라”(20:24). 그러니 너희도 짐승의 정결함과 부정함을 구별하라는 거예요(20:25). 식탁에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은 달라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장에서 레위기의 대표 구절이 처음 나와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

천몇백 년이 지나, 욥바의 한 집 지붕 위에서 배고픈 베드로가 환상을 봐요. 하늘에서 큰 보자기가 내려오는데, 레위기 11장에서 금한 짐승들이 가득해요.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베드로가 대답해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자 들린 말씀이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예요. 이런 일이 세 번이나 있었어요.

그리고 바로 그때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문을 두드려요. 베드로는 깨달아요. 이 환상은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였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행 10:28). 예수님도 이미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셨어요(막 7:19). 재밌는 건, 훗날 베드로가 편지에 레위기의 “거룩하라”를 그대로 인용한다는 거예요(벧전 1:16). 식탁의 구별로 배우던 거룩이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사람들의 삶이 되었어요.

돌아보기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사람을 내가 속되다 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별된 삶으로 거룩을 살아 냅니다.
5

“희생양(scapegoat)”이라는 말은
레위기 16장에서 태어났다

레위기 16:4, 7-10, 21-22, 27 · 히브리서 9:7, 11-12 · 13:11-12

일 년에 딱 하루,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이 있었어요. 일곱째 달 십일, 대속죄일이에요. 이날 대제사장은 금실로 수놓은 화려한 옷을 벗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16:4)을 입었어요.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들어가는 날에는 영광의 옷이 아니라 낮은 흰옷을 입은 거예요. 그리고 염소 두 마리를 세워 제비를 뽑았어요. 한 마리는 여호와께 속죄제로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해 광야로 보냈어요.

광야로 보내는 염소의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아론은 두 손을 살아 있는 염소 머리에 얹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들이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 머리에 두어요. 그러면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러 광야에 놓여요(16:21-22). 죄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실려 가는 거예요. 1530년 영국의 성경 번역자 윌리엄 틴데일은 이 염소를 “도망가는 염소”라는 뜻으로 “scapegoat”라고 옮겼어요. 오늘날 “남의 죄를 뒤집어쓰는 사람”을 가리키는 “희생양”이라는 말이 여기서 태어났어요.

대속죄일에 피를 성소로 가져간 짐승의 몸은 진영 밖에서 불살랐어요(16:27). 히브리서는 이 장면을 정확히 짚어요.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 레위기의 대제사장은 해마다 다시 들어가야 했지만, 예수님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우리 죄를 지고 성문 밖으로 나가신 분이 계셔요.

※ “아사셀”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오래전부터 해석이 갈려요. 또 아사셀 염소를 예수님의 모형으로 보는 것은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이며, 신약이 이 염소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아요.

돌아보기
내 죄를 다시 꺼내 들고 스스로를 정죄하는 대신, 그 죄를 지고 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6

예수님이 고르신 “둘째 계명”은
레위기 19장에 있었다

레위기 19:9-10, 14, 18, 34 · 룻기 2:2-3 · 마태복음 22:37-40 · 누가복음 10:27-37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은 두 구절로 대답하셨어요. 첫째는 신명기 6:5의 “마음을 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예요. 그런데 이 둘째 계명이 어디서 왔는지 아세요? 바로 레위기예요.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19:18). 지루하다고 건너뛰던 책 한가운데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사랑의 계명이 숨어 있었어요. 😄

레위기 19장은 이 사랑을 아주 구체적으로 풀어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19:14). 들리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하지 말라는 거예요. 사람은 못 들어도 하나님은 들으시니까요. 추수할 때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고 해요.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19:9-10). 이 규정 덕분에 모압 여인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웠고(룻 2:2-3), 그 룻이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려요(마 1:5).

레위기는 한 걸음 더 나가요.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19:34). 이웃의 범위가 우리 동포에서 나그네까지 넓어져요. 훗날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따져 물어요.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 10:29). 예수님은 대답 대신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강도 만난 우리에게 먼저 이웃이 되어 주신 분이 누구인지 보여 주시면서요.

돌아보기
“내 이웃이 누구냐”고 선을 긋기보다, 나에게 먼저 이웃이 되어 주신 예수님처럼 가까이 있는 한 사람에게 다가갑니다.
7

희년의 나팔은
대속죄일에 울렸다

레위기 25:8-12, 23 · 이사야 61:1-2 · 누가복음 4:16-21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나면 오십 년째 해가 와요. 그해가 희년이에요. 빚 때문에 팔았던 땅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고, 종이 되었던 사람은 자유를 얻어 가족에게 돌아가요. “희년”은 요벨, 곧 숫양 뿔나팔에서 온 이름이에요. 영어 “주빌리”도 여기서 나왔어요.

그런데 그 나팔을 언제 불었을까요? 레위기는 정확히 말해요.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25:9). 희년은 설날도 추수 감사절도 아니라 대속죄일에 시작됐어요. 죄가 먼저 씻겨야 자유가 선포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이런 말씀이 붙어 있어요.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25:23). 땅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시니 사람이 사람을 영원히 묶어 둘 수 없다는 거예요.

레위기 25:10의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는 말씀은 미국 필라델피아의 “자유의 종”에 새겨져 있어요. 1750년대에 만든 종인데, 훗날 노예 해방을 외치던 사람들이 이 종을 상징으로 삼으면서 “자유의 종”이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그리고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이 이사야 두루마리를 펴고 읽으셨어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그리고 말씀하셨어요.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진짜 희년은 예수님과 함께 왔어요.

※ 이사야 61:1의 “자유”는 레위기 25:10의 “자유”와 같은 히브리어 “데로르”예요.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이사야 61장과 예수님의 나사렛 설교를 희년의 성취로 읽어요. 이스라엘이 역사 속에서 희년을 실제로 얼마나 지켰는지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돌아보기
속죄가 있는 곳에 자유가 선포됨을 기억하며, 예수님이 불어 주신 희년의 나팔 소리 안에서 오늘을 삽니다.
맺는 글
멀리서 부르신 하나님이
마침내 우리 가운데 걸으셨다

레위기는 “부르시고”로 시작해요. 그리고 책의 끝자락 26장에서 하나님은 레위기 전체의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26:11-12). 제사와 피와 정결 규정은 모두 이 한 가지를 위한 거예요. 거룩하신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함께 걸으시는 것이요.

레위기의 수많은 제사장과 제물은 그 길을 잠시 열어 줄 수 있었지만, 해마다 다시 드려야 했어요. 그러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마지막 대제사장이시자 마지막 제물이신 분이 오셨어요. 이제 통독이 멈추던 레위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가신 이야기의 설계도로 읽혀요. 바울은 이 약속을 교회에 그대로 들려줘요.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6).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26:12)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