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만 빼고 제물 전체를 불살라 연기로 올려 드립니다. 그래서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에요. 나를 위해 남기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전적인 헌신의 제사입니다. 제단의 불은 꺼지지 않게 계속 피워야 했어요(6:13).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소가 없으면 양이나 염소, 그것도 없으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드리게 하셨어요(1:14).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부자에게만 열려 있지 않도록 하신 겁니다.
콩팥과 기름 꺼풀 너머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성경 66권을 꿰뚫는 한 줄기 이야기
새해마다 성경 일독을 결심합니다. 창세기는 드라마처럼 술술 읽히고, 출애굽기도 열 가지 재앙과 홍해 장면까지는 손에 땀을 쥐게 해요. 그런데 출애굽기 후반부 성막 치수에서 한 번 휘청하고, 레위기 1장에서 결정타를 맞습니다. 소를 잡아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고,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과 간에 덮인 꺼풀까지… 😄 “내가 지금 성경을 읽는 건지, 정육점 견습생 교본을 읽는 건지.”
그래서 많은 분들의 일독이 레위기에서 조용히 멈춥니다. 그런데 성경 역사를 보면 정반대 풍경이 하나 있어요.
왜 그랬을까요? 레위기는 성경 전체가 붙들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이에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 많은 사람이 어떻게 한 지붕 아래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면 십자가도, 교회도, 천국도 반쪽만 보입니다.
레위기를 히브리어 단어 몇 개만 알고 읽어도 풍경이 확 달라집니다.
모세오경 다섯 권을 나란히 놓으면 데칼코마니 같은 대칭이 보입니다. 창세기와 신명기는 둘 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끝나고(창 50:24, 신 34:4), 출애굽기와 민수기는 둘 다 광야를 걷는 이야기예요. 출애굽기는 시내산을 향해 가고, 민수기는 시내산에서 떠납니다. 만나, 반석의 물, 원망, 아말렉·발람 같은 적의 공격이 양쪽에 짝을 이루며 나와요. 그리고 그 정중앙에, 이스라엘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 책이 있습니다. 레위기입니다.
이제 레위기 안으로 한 번 더 줌인해 볼게요. 27장을 크게 나누면 이렇습니다.
막대 길이는 장 수에 비례합니다
앞부분 1~15장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가”, 뒷부분 17~27장은 “나아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룹니다. 학자들은 17~26장을 따로 ‘성결법전’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거룩하라”는 말이 반복해서 터져 나오는 단락이거든요. 그리고 두 부분을 잇는 경첩, 바로 그 자리에 16장 대속죄일이 있습니다.
레위기를 ‘시대를 초월한 규칙 모음’으로만 읽으면 따분해요. 레위기는 아주 구체적인 시간, 구체적인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날짜를 맞춰 보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출애굽기 40장 17절, 성막이 세워진 날은 출애굽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루입니다. 그리고 민수기 1장 1절은 둘째 해 둘째 달 초하루에 시작해요. 그러니까 레위기 27장 전체가 대략 한 달 사이에 시내산 회막에서 주어진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1년에 걸친 신학 강좌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사 오신 첫 달의 ‘입주 안내’였던 셈이에요.
출애굽기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보세요. 40장에 걸쳐 백성이 금과 은과 실을 바쳐 정성껏 성막을 지었습니다. 드디어 완공 날, 하나님의 영광이 내려와요.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출애굽기 40:34–35
해피엔딩 같지만 사실은 반전입니다. 하나님이 오셨는데,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말하던 모세조차(출 33:11) 들어가지 못해요. 하나님은 백성 한가운데 계신데, 아무도 그분께 다가갈 수 없습니다. 😄 집들이를 했더니 집주인이 먼저 들어가 앉으셨는데, 손님들은 전부 현관 밖에서 서성이는 상황이랄까요.
그런데 이게 왜 문제일까요?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을 기억해 보세요. 시내산 아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지 40일도 안 되어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출 33:3)고 하셨어요. 거룩하신 분이 죄인 가운데 계시면 그 거룩함이 오히려 사람을 태워 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막이 완성되었다고 끝이 아니에요. “이제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라는 숙제가 남은 겁니다.
그리고 레위기 첫 절이 바로 이어집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레위기 1:1–2
들어가지 못하던 모세를 하나님이 먼저 부르십니다. 레위기의 히브리어 제목 ‘와이크라’가 바로 이 첫 단어예요. 그리고 처음 하시는 말씀이 “예물(코르반)을 드리려거든”, 곧 “가까이 오려거든”입니다. 레위기 전체는 “이렇게 하면 너희가 내게 가까이 올 수 있다”는 하나님의 초대장이에요.
그러면 민수기 첫 절은 어떨까요?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민 1:1). 출애굽기 끝에서는 밖에 서 있던 모세가, 레위기를 지나고 나니 안에서 말씀을 듣고 있어요. 그래서 레위기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다리입니다. 이 다리를 건너야 이스라엘은 비로소 하나님을 모시고 광야로 행진할 수 있었어요.
창세기 3장 마지막 절에서 사람은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났고, 동산 입구는 그룹(케루빔)과 두루 도는 불칼이 지켰습니다(창 3:24). 그런데 성막을 자세히 보면, 에덴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가 곳곳에 숨어 있어요.
| 에덴 동산 (창 2–3장) | 성막 (출애굽기·레위기) |
|---|---|
| 입구가 동쪽, 사람은 동쪽으로 쫓겨남 (3:24) | 성막 문이 동쪽을 향함 (출 27:13–16) |
| 그룹이 생명나무 가는 길을 지킴 | 지성소 휘장에 그룹을 수놓고, 언약궤 위에 금 그룹 둘 (출 26:31, 25:18) |
| 동산 가운데 생명나무 | 살구꽃·가지 모양의 등잔대, 빛나는 한 그루 나무 (출 25:31–36) |
| 그 땅의 금과 호마노 (2:12) | 성막 기구는 순금, 대제사장 어깨에 호마노 두 개 (출 28:9) |
| 아담에게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심 (2:15) | 레위인이 회막을 “지키며 일하게” 하심. 같은 히브리어 동사 아바드·샤마르 (민 3:7–8) |
|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심 (3:8) | “내가 너희 중에 행하여” 같은 동사 할라크 (레 26:12) |
아담은 동산의 첫 제사장이었던 셈이에요. 그가 잃어버린 자리, 하나님과 함께 걷던 그 자리를 하나님이 성막이라는 형태로 광야 한복판에 다시 세워 주신 겁니다.
성막은 바깥에서 안으로 갈수록 점점 더 거룩해지는 구조예요. 재료도 바깥은 놋, 안은 금, 지성소는 순금. 들어갈 수 있는 사람도 점점 줄어듭니다.
이 구조가 레위기를 읽는 지도예요. 레위기의 모든 규정은 결국 “누가, 언제, 어떤 상태로,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가”를 다룹니다. 그리고 레위기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이 무엇인지 아세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레 7:20 등)입니다. 하나님 임재의 동심원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 그게 레위기가 말하는 가장 큰 비극이에요. 에덴에서 쫓겨난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니까요.
반대로 레위기의 목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안쪽으로, 하나님 얼굴 가까이로 데려가는 겁니다. 그 길에는 조건이 있어요. 죄와 죽음을 지닌 채로는 생명이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피(제사)가 필요하고, 정결이 필요하고, 중보자(제사장)가 필요해요. 레위기 1~15장이 정확히 이 세 가지를 순서대로 다룹니다.
콩팥과 기름 꺼풀이 지루한 이유는 그게 무엇을 보여 주는지 몰라서예요. 다섯 제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다섯 가지 다른 각도입니다. 먼저 모든 제사에 공통으로 흐르는 두 가지 원리를 짚고 갈게요.
이제 다섯 제사를 하나씩 볼게요. 각 카드의 버튼을 누르면 그 제사가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펼쳐집니다.
가죽만 빼고 제물 전체를 불살라 연기로 올려 드립니다. 그래서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에요. 나를 위해 남기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전적인 헌신의 제사입니다. 제단의 불은 꺼지지 않게 계속 피워야 했어요(6:13).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소가 없으면 양이나 염소, 그것도 없으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드리게 하셨어요(1:14).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부자에게만 열려 있지 않도록 하신 겁니다.
다섯 제사 중 유일하게 피가 없는 제사입니다. 고운 가루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얹어 드리는데, 한 줌만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이 돼요. 땀 흘려 일군 일상의 열매를 드리는 감사입니다.
두 가지 금지와 한 가지 필수가 있어요. 누룩과 꿀은 넣지 말라(2:11). 둘 다 발효와 부패를 일으키거든요. 대신 소금은 반드시 넣으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니까(2:13). 소금은 썩지 않게 지켜 주니, 변하지 않는 언약의 상징이었습니다.
‘평화(샬롬)’에서 이름이 왔어요. 기름과 콩팥은 하나님께 태워 드리고,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는 제사장이, 나머지 고기는 드린 사람과 가족이 먹습니다. 하나님, 제사장, 예배자가 한 식탁에 앉는 잔치예요. 다섯 제사 중 일반 백성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제사입니다.
재밌는 규정이 있어요. 감사로 드린 화목제 고기는 그날 다 먹어야 하고, 서원이나 자원으로 드린 것도 이튿날까지만 먹을 수 있습니다(7:15–16). 소 한 마리를 하루 이틀 만에 한 가족이 다 먹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죠. 결국 이웃을 불러 나눠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 하나님의 냉장고 금지 정책이 동네 잔치를 만든 거예요.
“부지중에”, 곧 모르고 지은 죄를 위한 제사입니다(4:2). 몰라서 지은 죄도 죄라는 것, 그래도 하나님이 길을 열어 두셨다는 것을 함께 알려 줘요.
가장 흥미로운 건 누가 죄를 지었느냐에 따라 제물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 죄를 지은 사람 | 제물 | 피를 뿌리는 곳 |
|---|---|---|
|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 | 수송아지 | 성소 안 휘장 앞 일곱 번, 분향단 뿔 |
| 온 회중 | 수송아지 | 성소 안 휘장 앞 일곱 번, 분향단 뿔 |
| 족장(지도자) | 숫염소 | 바깥뜰 번제단 뿔 |
| 평민 | 암염소 또는 어린 암양 | 바깥뜰 번제단 뿔 |
| 가난한 사람 | 비둘기 두 마리 (5:7) | 제단 곁 |
| 더 가난한 사람 | 고운 가루 에바 10분의 1 · 약 2.2리터 (5:11) | 한 줌을 제단에 |
지도자일수록 더 비싼 제물, 더 안쪽까지 피를 가져가야 했어요. 영향력이 클수록 죄가 공동체에 끼치는 오염도 깊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밀가루 한 되밖에 없는 사람에게도 길이 막히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사장과 회중을 위한 수송아지는 고기를 먹지 않고 진 밖으로 가져가 통째로 불살랐습니다(4:12, 21).
하나님의 성물이나 이웃의 재산에 손해를 끼친 죄를 위한 제사예요. 남의 물건을 맡았다가 속이거나, 주운 물건을 모른 척하거나, 거짓 맹세를 한 경우가 나옵니다(6:2–3).
핵심은 순서예요. 먼저 피해자에게 원래 것을 갚고, 거기에 5분의 1을 더해서 돌려준 다음에야 제단에 숫양을 가져옵니다(6:4–6). 100만 원어치를 손해 끼쳤다면 120만 원을 갚는 거예요. 레위기는 “하나님께만 회개하면 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용서는 관계의 회복과 손해의 회복까지 가야 한다는 거죠. 삭개오가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라고 한 건 이 정신을 훌쩍 넘어선 고백이었어요.
1~5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순서는 번제 → 소제 → 화목제 → 속죄제 → 속건제입니다. 하나님 쪽에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 곧 “전부를 드리는 헌신”부터 말씀하세요.
그런데 실제로 제사를 드리는 장면(레 9장)에서는 순서가 바뀝니다. 속죄제가 먼저, 그다음 번제, 그다음 화목제(9:8–22). 죄가 해결되어야(속죄제) 헌신이 가능하고(번제), 헌신한 사람이 하나님과 한 식탁에 앉습니다(화목제).
복음의 순서가 정확히 이래요. 먼저 십자가의 용서, 그다음 드려지는 삶,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와 기쁨. 우리가 먼저 헌신해서 용서를 얻는 게 아니라, 용서받은 사람이 헌신하는 겁니다.
레위기 12장은 출산한 여인의 정결 예식을 다룹니다. 원래는 1년 된 어린양을 번제로, 비둘기 하나를 속죄제로 드려야 하지만 “그의 힘이 어린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비둘기 두 마리로 대신할 수 있었어요(12:8).
누가복음 2장 24절에서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려가 바로 이 비둘기 두 마리를 드립니다. 레위기를 아는 사람은 이 짧은 구절에서 알아차려요. 하나님의 아들이 어린양 한 마리 살 형편도 안 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셨다는 것. 그리고 어린양을 드리지 못한 그 집에, 진짜 어린양이 안겨 있었다는 것을요(요 1:29).
제사를 누가 드릴까요? 8~10장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세워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단락은 레위기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라, 드라마처럼 읽혀요.
7일간의 위임식 중에 모세는 숫양의 피를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 오른손 엄지손가락, 오른발 엄지발가락에 바릅니다(8:23–24). 왜 하필 거기일까요? 하나님 말씀을 듣는 귀, 하나님 일을 하는 손, 하나님 길을 걷는 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표시였어요. 흥미롭게도 똑같은 예식이 나병에서 나은 사람의 정결 예식에도 나옵니다(14:14). 가장 거룩한 제사장과 가장 부정했던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회복되는 거예요.
위임식 여드레째, 아론이 처음으로 직접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레위기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펼쳐져요.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레위기 9:24
출애굽기 끝에서 성막을 채웠던 영광이 드디어 백성 앞에 나타난 겁니다. 하나님이 이 제사를 받으셨다는 확증이었어요. 시내산 아래서 금송아지를 섬겼던 그 백성이, 이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환호합니다.
그런데 장이 바뀌자마자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자 향로에 불을 담아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드립니다(10:1). 그리고 9장에서 제물을 삼켰던 바로 그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켜요(10:2).
왜 이렇게까지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를 가까이하는 자 중에서 내가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그리고 성경은 한 줄을 덧붙여요. “아론이 잠잠하니”(10:3).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두 아들을 잃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바로 뒤에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하세요(10:9). 그래서 많은 해석자들은 나답과 아비후가 술에 취한 채 들어갔을 가능성을 짚습니다. 확실한 건 하나예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은 내 마음대로 만드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 주신 길이어야 한다는 것.
정결법은 레위기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죠. 돼지는 먹으면 안 되고, 새우도 안 되고, 피부에 이상한 점이 생기면 제사장에게 보여야 하고, 심지어 집 벽에 핀 곰팡이까지 제사장이 검사하러 옵니다. 😄 이스라엘 제사장은 예배 인도자이면서 영양사, 피부과 의사, 주택 위생 점검관까지 겸했던 거예요.
하나씩 열쇠를 찾아볼게요.
레위기에서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들을 모아 보면 공통점이 보여요. 시체를 만지는 것, 피의 유출(생명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살이 썩어 들어가는 듯한 악성 피부병, 곰팡이처럼 집을 부패시키는 것. 전부 죽음의 그림자예요.
그러니 ‘부정함’은 곧 ‘죄’가 아닙니다. 출산한 여인도, 장례를 치른 가족도 부정해져요. 그건 죄가 아니라 죽음이 들어온 세상에서 사는 인간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시니, 죽음의 흔적을 지닌 채로는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게 하신 거예요. 그리고 정해진 기간과 절차를 거치면 반드시 정결해질 수 있는 길도 함께 주셨습니다.
먹을 수 있는 짐승은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것(11:3), 물고기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11:9)이었어요. 왜 이런 기준일까요? 위생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다 설명이 안 됩니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는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았어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하늘·땅·물을 나누고 각각에 맞는 생물을 채우셨는데, 그 범주에 온전히 들어맞는 것은 정결하고, 경계에 걸쳐 있거나 섞인 것(비늘 없이 물에 사는 것, 땅을 기어 다니는 것 등)은 부정하다는 거예요. 정결법이 매일 식탁에서 창조의 질서를 떠올리게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레위기 스스로 이유를 말합니다.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 이스라엘은 하루 세 번 밥을 먹을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구별된 백성”이라는 걸 기억했어요. 거룩은 성전에서만이 아니라 식탁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13장의 ‘나병’(히브리어 차라아트)은 오늘날의 한센병과 꼭 같은 병은 아니고, 피부와 옷과 벽에 생기는 여러 증상을 아우르는 말이에요. 진단을 받은 사람은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입술을 가린 채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며 진 밖에서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13:45–46).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공동체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끊어진 삶이었어요.
그런데 14장에 이 사람이 나았을 때의 예식이 나옵니다. 새 두 마리를 가져와 한 마리는 흐르는 물 위에서 잡고, 살아 있는 다른 한 마리를 그 피에 적셔 들판으로 날려 보내요(14:4–7). 한 생명은 죽고, 다른 생명은 죽은 생명의 피를 묻힌 채 자유롭게 날아갑니다. 죽음과 부활의 그림이 이렇게 오래전부터 그려져 있었어요.
마가복음 5장을 레위기의 눈으로 읽으면 소름이 돋아요. 이 한 장에 레위기가 말하는 가장 심각한 부정 세 가지가 차례로 등장합니다.
| 마가복음 5장 | 레위기적 부정 | 예수님이 하신 일 |
|---|---|---|
|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 (1–20절) | 무덤 사이에 살고(시체), 이방 땅, 근처에 돼지 떼 |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그를 온전하게 하심 |
| 혈루증 여인 (25–34절) | 12년 동안 피의 유출 (레 15:25) | 옷자락을 만지자 부정이 옮지 않고 그녀가 나음 |
| 야이로의 딸 (35–43절) | 시체 (민 19:11) | 손을 잡으시자 소녀가 살아남 |
레위기를 모르고 읽으면 “아, 병을 고치셨구나” 하고 지나갑니다. 레위기를 알고 읽으면 깨닫게 돼요.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신 게 아니라, 율법이 그토록 가리키던 생명 자체로 오셔서 죽음을 거꾸로 밀어내신 거예요. 그리고 베드로가 환상 중에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을 들었을 때(행 10:15), 음식의 구별을 넘어 이방인에게도 복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16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16:1). 10장의 비극을 잊지 말라는 거예요. 그리고 곧바로 “아무 때나 휘장 안 지성소에 들어가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16:2). 그런데 동시에 이 장은, 들어갈 수 있는 단 하루를 알려 줍니다. 일곱째 달 열흘날, 대속죄일이에요.
그날의 순서를 따라가 보세요. 순서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습니다.
왜 두 마리일까요? 한 마리로는 다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용서에는 두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의 값이 치러지는 것, 그리고 내 삶에서 죄가 치워지는 것. 대속죄일은 이 둘을 한날에 보여 주었어요.
‘아사셀’은 성경에서 레위기 16장에만 나오는 낱말이라 뜻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해석은 크게 세 가지예요. ① “떠나가는 염소”(옛 영어 성경의 ‘scapegoat’가 여기서 나왔어요), ② 염소를 보내는 “험한 낭떠러지나 황무지”라는 장소 이름, ③ 광야에 산다고 여겨진 악한 존재의 이름.
어느 쪽이든 중요한 건 방향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진 한가운데에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내졌어요. 염소는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이 아니라, 죄를 멀리 실어 나르는 운반자였습니다.
히브리서 9~10장은 대속죄일을 장면 그대로 따라가며 예수님과 비교합니다.
| 레위기 16장의 대제사장 | 대제사장 예수님 (히브리서) | |
|---|---|---|
| 자기 죄 | 자기 죄를 위해 먼저 속죄해야 함 | 죄가 없으셔서 그럴 필요가 없음 (7:26–27) |
| 어떤 피 | 염소와 송아지의 피 | 자기 피 (9:12) |
| 몇 번 | 해마다 반복 | 단번에, 영원히 (9:12, 26; 10:10) |
| 어디로 | 손으로 지은 지성소 | 하늘 그 자체 (9:24) |
| 누가 들어가나 | 대제사장 혼자 | 우리도 담력을 얻어 들어감 (10:19–20) |
그리고 바울은 로마서 3장 25절에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화목제물’이라 부릅니다. 이 헬라어 ‘힐라스테리온’은 구약 헬라어 번역에서 레위기 16장의 속죄소(언약궤의 덮개)를 가리키던 단어예요. 대속죄일에 피가 뿌려지던 바로 그 자리, 그게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대속죄일을 지나면 레위기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이제 질문은 “어떻게 들어가나”가 아니라 “들어간 사람은 어떻게 사나”예요. 이 단락의 주제 문장이 이것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위기 19:2
그리고 이 단락 내내 하나님은 문장 끝에 도장을 찍듯 반복하세요. “나는 여호와이니라.” 특히 19장에서는 거의 한두 절마다 나옵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최종 근거가 늘 같아요. “내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거룩하라”는 장엄한 선언 바로 다음에 무엇이 나오는지 보세요. 신비한 체험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생활입니다.
| 구절 | 거룩은 이런 모습 |
|---|---|
| 19:9–10 |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과 포도는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를 위해 남겨 두라.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운 게 바로 이 법 덕분이었어요. |
| 19:13 | 품꾼의 삯을 다음 날 아침까지 미루지 말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에게 하룻밤은 굶주림이니까요. |
| 19:14 | 귀먹은 사람을 저주하지 말고 맹인 앞에 장애물을 두지 말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보신다는 거예요. |
| 19:18 | 원수를 갚지 말며 원망하지 말고,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
| 19:32 |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 |
| 19:33–34 | 거류민을 학대하지 말고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느니라. |
| 19:35–36 | 재판과 길이와 무게와 양을 속이지 말고 공평한 저울을 쓰라. |
거룩은 월급날을 지키는 일이고, 저울 눈금을 속이지 않는 일이며, 어르신이 들어오시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이 목록 한가운데에 예수님이 “둘째 큰 계명”으로 인용하신 말씀(마 22:39)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가 신약의 말씀인 줄 아시는데, 원래 레위기 말씀이에요. 게다가 레위기는 이웃뿐 아니라 나그네(외국인)까지 자기같이 사랑하라고 말합니다(19:34).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로 “누가 내 이웃이냐”에 답하신 것도 이 말씀 위에서였어요(눅 10:25–37).
23장은 이스라엘의 절기를 정리합니다. 이스라엘은 1년 내내 이 절기를 따라 살면서 구원의 이야기를 몸으로 다시 살았어요. 그런데 신약을 펴 보면 놀라운 일이 보입니다.
| 절기 (레 23장) | 이스라엘에게 | 신약에서 |
|---|---|---|
| 유월절 1월 14일 | 어린양의 피로 죽음이 넘어감 |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전 5:7) · 실제로 유월절에 십자가 |
| 무교절 1월 15일부터 7일 | 누룩 없는 떡, 서둘러 떠난 출애굽 | “누룩 없는 떡으로” 순전하게 살라 (고전 5:8) |
| 초실절 안식일 이튿날 | 첫 이삭 한 단을 흔들어 드림 | 안식일 이튿날 부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고전 15:20) |
| 칠칠절 50일째 | 밀 추수의 감사 | 오순절(‘50’) 성령 강림, 3천 명의 첫 추수 (행 2장) |
| 나팔절 7월 1일 | 나팔 소리로 거룩한 모임 | 많은 해석자들이 재림의 나팔과 연결 (살전 4:16) |
| 속죄일 7월 10일 | 온 민족의 죄가 덮임 | 대제사장 예수님의 단번의 속죄 (히 9장) |
| 초막절 7월 15일부터 7일 | 광야에서 장막에 살던 것을 기억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매” (요 1:14) ·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계 21:3) |
봄 절기 네 개는 예수님의 십자가·장사·부활·성령 강림에서 날짜까지 맞아떨어지며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가을 절기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완성될 것을 기대하며 바라봅니다. 레위기의 달력은 사실 구원의 시간표였던 거예요.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나 49년이 차면, 50년째 해는 희년입니다. 이 해에는 빚이 탕감되고, 가난 때문에 팔았던 땅이 원래 가족에게 돌아가고, 종으로 팔렸던 사람이 자유를 얻어 집으로 돌아가요(25:10). 그리고 이 해는 대속죄일에 뿔나팔을 불며 시작됩니다(25:9).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바로 그날, 사회도 다시 출발하는 거예요.
그 근거가 놀랍습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25:23). 땅도 사람도 결국 하나님의 것이니,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25장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제도가 있어요. 가난해서 땅을 판 사람이 있으면 가장 가까운 친척이 대신 값을 치르고 되찾아 주는 제도, ‘기업 무를 자(고엘)’입니다(25:25). 룻기의 보아스가 바로 이 고엘이었고, 성경은 그 계보에서 다윗이,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참된 고엘이신 예수님이 나신다고 말해요.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첫 설교를 하시며 이사야서를 펴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를 읽으시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18–21). 희년이 한 사람 안에서 시작된 겁니다.
26장은 순종하면 받을 복과 불순종하면 겪을 징계를 길게 늘어놓습니다. 무섭게 읽히는 장이에요. 그런데 그 징계의 맨 끝에 하나님은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그런즉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땅에 있을 때에 내가 그들을 내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맺은 나의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레위기 26:44
가장 어두운 경고 끝에도 하나님은 문을 닫지 않으세요. 그리고 27장은 서원, 곧 자원해서 자신이나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하는 법으로 책을 마칩니다. 사람을 드리겠다고 서원한 경우 그 값을 은으로 정했는데, 20~60세 남자는 은 50세겔이었어요(27:3). 은 1세겔이 약 11.4g이니 은 약 570g, 오늘날 은 시세로 대략 백만 원 남짓의 금액입니다(시세에 따라 달라져요). 레위기는 이렇게 억지가 아닌 자원하는 헌신으로 끝납니다. 율법의 책이 사랑의 응답으로 마무리되는 거예요.
레위기 26장 11~12절에 레위기 전체의 목표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이 약속이 성경 끝까지 어떻게 흘러가는지 따라가 볼게요.
이제 레위기를 다시 펴실 때, 어떤 장을 읽든 이 세 가지 질문을 붙들고 읽어 보세요. 지루하던 규정들이 하나씩 말을 걸어오기 시작할 거예요.
죄, 죽음, 부패, 불의.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제물, 피, 제사장, 휘장, 절기. 그 그림자 끝에 서 계신 예수님을 찾아보세요.
밭 모퉁이, 품꾼의 삯, 공평한 저울. 오늘 내 일상에서 거룩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물어보세요.
| 주 | 범위 | 붙들 질문 |
|---|---|---|
| 1주 | 1–7장 · 다섯 제사 |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어떤 마음으로 드리고 있나? |
| 2주 | 8–15장 · 제사장과 정결 | 나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부정’은 무엇인가? |
| 3주 | 16–20장 · 속죄일과 거룩한 삶 | 단번의 속죄를 받은 사람으로서 오늘 어떻게 살까? |
| 4주 | 21–27장 · 절기, 희년, 언약 | 내 시간표와 소유는 누구의 것인가? |
레위기는 규칙의 책이 아니라 초대의 책입니다. “거룩한 내가 어떻게 너희와 함께 살 수 있는지 알려 주마.” 출애굽기가 하나님을 백성 가운데 모셔 왔다면, 레위기는 백성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엽니다. 그리고 민수기에서 그들은 그 하나님을 모시고 행진을 시작해요.
그 길의 모든 제물, 모든 피, 모든 제사장, 모든 절기는 한 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레위기를 읽는다는 건 십자가를 가장 자세한 설계도로 미리 보는 일이에요. 이제 콩팥과 기름 꺼풀 앞에서도, 그 너머에 서 계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보이실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