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60

호세아,
떠난 아내를
다시 사 온 선지자

선지자의 결혼 생활이 그대로 설교가 된 책,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호세아 1–14장
여는 글

호세아서는 선지자의 결혼 이야기로 시작해요.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고멜이라는 여인과 결혼하라고 하셨는데, 그 아내가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들을 따라가요.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다시 가서 그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세요. 호세아는 값을 치르고 아내를 다시 데려와요. 😢 한 남자의 아픈 결혼 생활이 그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설교가 된 거예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였는데 바알을 따라갔어요. 그래도 하나님은 그 신부를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이 책에는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고 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가득해요. 고멜과의 결혼, 세 자녀의 이름, 아골 골짜기의 문, 은 열다섯 개, 아침 구름 같은 사랑, 뒤집지 않은 전병, 그리고 애굽에서 부른 아들까지 따라가 볼게요.

1부

호세아는 어떤 책일까?

배신당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준 책

호세아는 주전 8세기 중엽,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부터 활동했어요(1:1). 겉으로는 나라가 부유하고 평화로웠지만, 백성은 바알 숭배와 부정한 정치에 깊이 빠져 있었어요. 여로보암 2세가 죽은 뒤 30년 동안 왕이 여섯 번 바뀌고, 그중 넷이 암살당해요. 그리고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무너져요. 호세아는 그 마지막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 낸 선지자예요.

"구원"이라는 이름호세아는 히브리어로 "호셰아", "구원"이라는 뜻이에요. 여호수아의 원래 이름도 "호세아"였어요(민 13:16). 여호수아와 예수님의 이름도 같은 뿌리예요.
북쪽 사람이 북쪽에 전한 예언글로 남은 선지서 가운데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출신이 북이스라엘에 전한 거의 유일한 책으로 봐요. 그래서 북쪽 지명과 북쪽 말투가 많이 나와요.
호세아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결혼으로 보여 준 언약
선지자의 결혼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 줘요.
2
자녀 이름의 메시지
세 자녀의 이름이 심판을, 그리고 나중에 뒤집혀 회복을 선포해요.
3
"헤세드"
변치 않는 언약의 사랑, "인애"가 책 전체의 열쇠 말이에요.
4
농사와 자연의 언어
이슬, 아침 구름, 비둘기, 전병, 포도나무 같은 일상 이미지가 가득해요.
5
회복의 약속
마지막 14장은 돌아오라는 초대와 치유의 약속으로 끝나요.

호세아서의 중심에는 이 말씀이 있어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6). 예수님은 이 말씀을 두 번이나 인용하셨어요(마 9:13; 12:7). 떠난 신부를 끝까지 찾아오시는 사랑은 값을 치르고 우리를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돼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고멜과의 결혼부터 애굽에서 부른 아들까지

1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라",
선지자에게 내려진 가장 아픈 명령

호세아 1:2-3

호세아서는 이렇게 시작해요.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에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1:2). 😮 선지자에게 이런 결혼을 하라니요.

호세아는 순종해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해요(1:3). 학자들은 이 명령을 두고 오래 고민했어요. 고멜이 처음부터 음란한 여인이었을까요, 아니면 결혼 후에 떠난 것을 하나님이 미리 보시고 말씀하신 걸까요? 어느 쪽이든 호세아는 평생 그 아픔을 안고 살아야 했어요.

하나님이 이 아픈 결혼을 명령하신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결혼하셨는데, 이스라엘은 바알을 따라갔어요. 하나님이 느끼시는 그 배신의 아픔을 호세아가 자기 결혼으로 똑같이 겪게 된 거예요. 선지자는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배신당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슴으로 알게 되었어요.

※ 고멜이 결혼 전부터 음란했는지, 결혼 뒤에 그렇게 되었는지, 또 이 이야기를 실제 사건으로 볼지 상징적인 이야기로 볼지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어요. 교회는 대체로 실제 결혼으로 읽어 왔어요.

돌아보기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것을 사랑할 때 하나님이 느끼시는 아픔을 기억하며, 내 마음이 누구에게 가 있는지 돌아봅니다.
2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한 자", "내 백성이 아니라",
그리고 뒤집힌 이름들

호세아 1:4-11 · 2:23 · 로마서 9:25-26 · 베드로전서 2:10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 세 아이가 태어나는데, 하나님이 이름을 지어 주세요. 첫째 아들은 "이스르엘"이에요(1:4). 이스르엘은 예후가 아합의 집안을 피로 쓸어버린 골짜기 이름이에요. 그 피의 값을 갚으시겠다는 뜻이었어요.

둘째 딸은 "로루하마",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한 자"예요(1:6). 셋째 아들은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라"예요(1:9). 😢 아이들을 부를 때마다 "얘, 불쌍히 여김 못 받은 아이야", "얘, 내 백성 아닌 아이야" 해야 했어요. 이름 자체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다는 선포였어요.

그런데 바로 다음 절부터 이름이 뒤집혀요.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1:10). 2장 끝에서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세요. "내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2:23). 바울과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이방인 성도들에게 적용해요(롬 9:25-26; 벧전 2:10). "로암미"였던 우리가 "암미(내 백성)"가 되었어요. 우리의 이름을 바꾸신 분은 긍휼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세요.

돌아보기
"너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하던 내가 "내 백성"이라 불리게 된 은혜를 기억하며, 그 새 이름에 걸맞게 삽니다.
3

"내 주인"이 아니라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아골 골짜기에 낸 소망의 문

호세아 2:14-20 · 여호수아 7:24-26

떠난 신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놀라워요. 벌을 주시겠다고 하신 뒤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2:14). "말로 위로하고"는 직역하면 "그의 마음에 말하고"예요. 신랑이 신부를 처음 데리고 광야로 나갔던 출애굽 때처럼 다시 연애를 시작하시겠다는 거예요. 😊

그리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2:15). 아골 골짜기는 여호수아 때 아간이 범죄하여 돌에 맞아 죽은 "괴로움의 골짜기"예요(수 7:26). 실패와 부끄러움의 골짜기를 하나님은 소망의 문으로 바꾸시겠다고 하세요.

그리고 히브리어 말놀이가 나와요.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2:16). "바알"은 가나안 신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주인, 남편"이라는 뜻의 흔한 말이었어요. 😄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바알"처럼 섬기다 보니 하나님과 바알이 헷갈렸던 거예요. 하나님은 "주인(바알)"이 아니라 "남편(이쉬)"이라는 다정한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셨어요. 그리고 약속하세요.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2:19). 신랑 되신 하나님은 우리와 다시 시작하길 원하세요.

돌아보기
하나님을 두려운 주인으로만 대하지 않고, 나를 광야로 데려가 마음에 말씀하시는 신랑으로 사랑합니다.
4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
떠난 아내를 다시 사 오다

호세아 3:1-5 · 출애굽기 21:32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세요.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그와 같이 그 여자를 사랑하라"(3:1). 😢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간 아내를 다시 가서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고멜은 그 사이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 있었던 것 같아요. 호세아가 값을 치러야 했거든요.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3:2). 은 열다섯 세겔은 약 171그램, 오늘 은 시세(2026년 10월 초, 1그램 약 2,700원)로 46만 원쯤이에요. 보리 한 호멜 반은 수백 리터쯤 되는 양이에요. 많은 주석가들은 은과 보리를 합하면 종 한 사람의 값인 은 삼십 세겔(출 21:32) 정도가 되었을 거라고 봐요. 은이 모자라 곡식까지 털어 냈는지도 몰라요.

호세아는 자기를 배신한 아내를 노예 값을 치르고 다시 사 왔어요. 그리고 말해요.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3:3). 이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에요.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죄의 종이 되었고, 하나님은 값을 치르고 우리를 다시 사셨어요. 그 값은 은 열다섯 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피였어요(벧전 1:18-19).

※ 한 호멜의 양은 정확하지 않아 대략 200리터 안팎으로 봐요. 은과 보리를 합한 값이 종의 값과 비슷했다는 것은 주석가들의 추정이에요.

돌아보기
죄의 종이 되어 있던 나를 다시 사 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이제 다른 사랑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5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 같도다",
그리고 셋째 날에 일으키시리니

호세아 6:1-6 · 마태복음 9:13 · 12:7

백성이 회개하는 것 같은 노래를 불러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6:1-2). 많은 교부들은 이 "셋째 날"을 예수님의 부활과 연결해 읽었어요. 바울이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4)라고 할 때 이 구절을 떠올렸을 거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이 아파요.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6:4). 😢 이스라엘의 회개는 아침 안개 같았어요. 해가 뜨면 금방 사라지는 이슬처럼 잠깐 뜨거웠다가 식어 버렸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세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6). "인애"는 헤세드예요. 변치 않는 언약의 사랑이에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죄인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비난하고(마 9:13),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자른 것을 비난할 때(마 12:7) 이 구절을 인용하셨어요. 아침 구름 같은 우리의 사랑과 달리, 하나님의 헤세드는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돌아보기
아침 구름처럼 금세 사라지는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데서 오는 변치 않는 사랑을 구합니다.
6

한쪽만 익은 전병,
앗수르와 애굽 사이를 오가는 어리석은 비둘기

호세아 7:8-11

호세아는 생활 속 이미지로 이스라엘을 묘사하는 데 천재였어요. 7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요. "에브라임은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7:8). 😄 뜨거운 돌판에 빵을 구우면서 뒤집지 않으면, 한쪽은 새까맣게 타고 다른 쪽은 날것 그대로예요. 먹을 수도 없고 다시 구울 수도 없는 빵이에요.

이스라엘이 그랬어요.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이방 나라와 신들에게 기대고 있었어요. 반은 타고 반은 날것인 신앙이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요. "이방인들에게 그의 힘이 삼켜졌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7:9). 힘이 빠지고 흰머리가 나는데도 자기가 늙어 가는 줄 몰랐어요.

또 이런 비유도 나와요.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7:11). 😄 북이스라엘은 이쪽 강대국에 기댔다가 저쪽 강대국에 기댔다가 왔다 갔다 했어요. 그물에 걸리는 줄도 모르고 날아다니는 비둘기처럼요. 그들이 끝내 하지 않은 한 가지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었어요(7:10). 반쯤 익은 신앙을 온전히 바꾸실 수 있는 분은 우리를 다시 빚으시는 하나님뿐이에요.

돌아보기
한쪽은 타고 한쪽은 날것인 반쪽 신앙은 아닌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기대느라 하나님께는 오지 않는지 돌아봅니다.
7

"내가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호세아 11:1-9 · 마태복음 2:15

호세아 11장은 구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 가운데 하나예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세요.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11:1). 그리고 아버지처럼 말씀하세요.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11:3-4). 😊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고 넘어지면 안아 주던 아버지예요.

마태는 아기 예수님이 헤롯을 피해 애굽에 갔다가 돌아오신 일을 기록하며 이 구절을 인용해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함이라"(마 2:15). 이스라엘이라는 "아들"의 이야기를 예수님이 다시 걸으셨다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실패한 그 길을, 참 아들 예수님은 끝까지 순종하며 걸으셨어요.

그런데 이 장의 클라이맥스는 하나님의 마음이 흔들리는 장면이에요. 배신한 아들을 벌해야 하는데 이렇게 말씀하세요.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11:8). 😢 성경에서 하나님의 속마음이 이렇게 흔들리는 장면은 드물어요.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11:9). 사람이라면 벌써 포기했겠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세요. 그 긍휼이 불붙은 자리가 십자가예요.

돌아보기
나에게 걸음마를 가르치시고 넘어질 때 안아 주신 하나님, 나를 결코 놓지 않으시는 그 사랑 안에서 다시 일어납니다.
맺는 글
떠난 신부를 포기하지 않은 사랑

호세아서는 하나님이 얼마나 아파하시는 분인지 보여 줘요. 하나님은 배신당해도 무감각한 분이 아니라, 떠난 아내 때문에 우는 남편처럼, 집 나간 아들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아버지처럼 아파하세요. 그 아픔을 알려 주시려고 선지자의 결혼까지 설교로 쓰셨어요.

그리고 그 사랑은 끝내 포기하지 않아요.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바꾸시고, "내 백성 아니라" 하던 이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시고, 노예 값을 치르고 떠난 아내를 다시 데려오세요. 그 사랑의 끝에 우리를 피값으로 사신 신랑 예수 그리스도가 계세요.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14:4)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