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57

예레미야애가,
알파벳으로
쓴 눈물

무너진 예루살렘을 ㄱ부터 ㅎ까지 울어 낸 다섯 편의 노래,
그 한가운데에 "아침마다 새로우니"가 있다

예레미야애가 1–5장
여는 글

예레미야애가는 성경에서 가장 슬픈 책이에요. 주전 586년,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무너뜨리고 성전을 불태운 직후의 노래예요. 굶주린 아이들, 끌려간 백성, 폐허가 된 거리. 다섯 장 내내 눈물이 흘러요. 😢 그래서 유대인은 지금도 성전이 무너진 날을 기억하는 금식일(아브월 9일)에 이 책을 읽어요.

그런데 이 슬픔은 아무렇게나 쏟아진 울음이 아니에요. 다섯 편 가운데 네 편이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정교하게 지어졌어요. 그리고 가장 깊은 절망의 한가운데, 책의 정중앙에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망의 고백이 숨어 있어요. "어찌하여"라는 첫 마디, 알파벳으로 쓴 슬픔, 절뚝거리는 장례 리듬, 지나가는 이들에게 묻는 질문, 아침마다 새로운 긍휼, 빛을 잃은 금, 그리고 대답 없는 마지막 기도까지 따라가 볼게요.

1부

예레미야애가는 어떤 책일까?

무너진 성을 위한 다섯 편의 장례 노래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 멸망(주전 586년) 직후에 지어진 다섯 편의 애가예요. 책 안에 저자 이름은 없지만, 오래된 전통은 예레미야를 저자로 여겨 왔어요. 역대하 35:25는 예레미야가 요시야 왕을 위해 애가를 지었다고 말하고, 헬라어 칠십인역은 이 책 앞에 "예레미야가 앉아 울며 이 애가를 지었다"는 머리말을 붙였어요. 그래서 우리말 성경 이름도 "예레미야애가"가 되었어요. 무너진 도시를 두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우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에요.

히브리어 제목 "에카"히브리어 성경은 첫 단어를 따서 이 책을 "에카"라고 불러요. "어찌하여, 아아 어찌"라는 탄식이에요. 1장, 2장, 4장이 모두 이 말로 시작해요.
성전이 무너진 날에 읽는 책유대인은 아브월 9일(티샤 베아브)에 첫 성전과 둘째 성전이 무너진 것을 함께 슬퍼하며, 회당 바닥에 앉아 애가를 낭독해요.

※ 애가의 저자를 예레미야로 보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지만, 책 안에는 저자 이름이 나오지 않아요. 여러 사람의 노래를 모은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어요.

예레미야애가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다섯 편의 시
다섯 장이 각각 독립된 애가로, 무너진 성을 서로 다른 목소리로 노래해요.
2
알파벳 구조
1, 2, 4장은 22절, 3장은 66절로 알파벳 순서를 따라요. 5장만 22절이지만 알파벳 시는 아니에요.
3
장례 노래의 리듬
한 줄이 길고 짧게 절뚝거리는 "키나" 리듬으로 노래해요.
4
한가운데의 소망
책 정중앙인 3장에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가 있어요.
5
정직한 탄식
하나님께 따지고 묻는 말까지 숨기지 않고 기도로 올려요.

애가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이 고백이 솟아나요.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3:22-23). 무너진 성 한가운데서도 끝나지 않은 그 긍휼은 마침내 우리를 위해 무너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어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어찌하여"라는 첫 마디부터 대답 없는 기도까지

1

"에카", 어찌하여
에덴에서 들린 "아예카"와 같은 글자

예레미야애가 1:1 · 창세기 3:9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1:1). 첫 단어 "슬프다"는 히브리어 에카예요. "어찌하여, 아아 어찌 이럴 수가" 하는 탄식이에요. 사람으로 가득하던 도시가 남편 잃은 여인처럼 홀로 앉아 있어요.

재밌는 연결이 있어요. 히브리어는 원래 자음만 적었는데, "에카"의 자음은 창세기 3:9에서 하나님이 숨은 아담에게 물으신 "아예카(네가 어디 있느냐)"와 똑같아요. 😮 옛 유대 랍비들은 이 둘을 나란히 놓고 이렇게 풀었어요. 하나님은 에덴에서 범죄한 아담을 "아예카" 하고 부르시며 찾으셨고, 동산에서 쫓겨나는 그를 보며 슬퍼하셨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는 이스라엘을 보며 다시 "에카" 하고 우셨다.

애가는 사람의 울음이지만, 그 뒤에서 하나님도 함께 우신다는 거예요.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처럼, 땅에서 쫓겨난 이스라엘처럼, 길을 잃은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지금도 "네가 어디 있느냐" 부르세요. 그리고 마침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눅 19:10)이 그 부르심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되셨어요.

※ "에카"와 "아예카"를 연결하는 해석은 유대 미드라시(애가 랍바)에 나오는 전통적인 풀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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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자리에서 "어찌하여" 울 때, 나를 "네가 어디 있느냐" 부르시며 함께 우시는 하나님께 대답합니다.
2

ㄱ부터 ㅎ까지 울다,
알파벳으로 지은 슬픔

예레미야애가 1–4장

예레미야애가 1장은 22절이에요. 히브리어 알파벳도 22글자예요. 1절은 첫 글자 "알렙"으로, 2절은 둘째 글자 "베트"로, 그렇게 22절까지 알파벳 순서대로 시작해요. 2장과 4장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3장은 66절인데, 한 글자마다 세 절씩, 그러니까 알렙으로 세 절, 베트로 세 절… 정교하게 짜여 있어요.

왜 슬픔을 이렇게 까다로운 형식에 담았을까요? 😄 우리말로 치면 "ㄱ부터 ㅎ까지" 울었다는 거예요. 슬픔이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완전하다는 표현이에요. 동시에 형식이라는 그릇이 혼돈 같은 슬픔을 담아 주기도 해요. 감정이 무너질 때 한 글자씩 한 글자씩 순서를 따라가며 우는 것은, 그 자체로 마음을 붙드는 길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숨은 디테일이 하나 더 있어요. 2, 3, 4장에서는 알파벳 열여섯째 글자 "아인"과 열일곱째 글자 "페"의 순서가 바뀌어 있어요. 😮 실수가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에서 쓰던 알파벳 순서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봐요. 이스라엘 땅에서 발굴된 고대 알파벳 연습 토기에도 "페"가 "아인"보다 먼저 나오는 것이 있거든요. 다섯째 장만 알파벳 시가 아닌 것도 의미심장해요. 마지막 기도에서는 형식마저 무너질 만큼 간절했던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질서 있는 기도도, 무너진 울음도 다 받으세요.

※ "페"와 "아인"의 순서가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어요. 쿰란에서 나온 애가 사본 일부는 1장에서도 순서가 바뀌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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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숨기지 않되, 한 글자씩 순서를 따라가듯 하나님 앞에서 차근차근 울며 내 마음을 정돈합니다.
3

길게, 짧게, 절뚝거리는
장례 노래의 리듬

예레미야애가 1:1-2 · 아모스 5:1-2

애가를 히브리어로 소리 내어 읽으면 독특한 리듬이 느껴져요. 한 줄이 둘로 나뉘는데, 앞부분은 길고 뒷부분은 짧아요. 셋, 둘. 셋, 둘. 마치 한쪽 다리를 저는 사람의 걸음처럼 절뚝거려요. 😢

1882년 독일 학자 카를 부데가 이 리듬에 이름을 붙였어요. 히브리어로 장례 노래를 뜻하는 키나예요.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이 리듬으로 애곡하는 노래를 불렀어요. 아모스도 같은 리듬으로 이스라엘을 위한 조가를 불러요.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로다"(암 5:2).

그러니까 애가는 한 도시를 위한 장례식이에요. 예루살렘이라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고, 백성은 상복을 입고 그 시신 곁에 앉아 절뚝거리는 노래를 불러요. 숨이 끊어질 듯 짧게 끝나는 둘째 마디가 슬픔을 더해요. 그런데 성경은 이 장례 노래를 그냥 끝내지 않아요. 죽음을 정직하게 애도한 그 자리에 죽음을 이기실 부활의 소망을 함께 심어 두었어요.

※ "키나 리듬"이 애가 전체에 일정하게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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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 서둘러 괜찮은 척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애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4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헨델이 예수님의 고난에 붙인 노래

예레미야애가 1:12 · 마태복음 27:39

무너진 예루살렘이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외쳐요.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1:12). 사람들은 폐허를 힐끗 보고 지나가요. 남의 일이니까요.

그런데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 구절을 십자가 아래에서 읽어 왔어요. 골고다 언덕 길가에 달리신 예수님 곁을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마 27:39) 지나갔어요. 그 장면에서 이 질문이 다시 들려요.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헨델의 『메시아』 2부에는 예수님의 고난을 노래하는 짧은 독창곡이 있는데, 그 가사가 바로 이 구절이에요. "보라, 그리고 보라, 그의 슬픔과 같은 슬픔이 있는가". 😢 많은 교회가 성금요일 예배에서 이 구절을 읽어요. 무너진 성의 고통이, 하나님의 진노를 우리 대신 받으신 분의 고통과 겹쳐져요. 그 고통은 우리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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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곁을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이 되지 않고, 그 고통이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기억하며 걸음을 멈춥니다.
5

책의 정중앙에 숨은 고백,
"아침마다 새로우니"

예레미야애가 3:1-33

3장은 이렇게 시작해요.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3:1). 그리고 스무 절 가까이 처절한 탄식이 이어져요. 하나님이 나를 흑암에 걸어가게 하셨고, 내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셨고, 내 기도를 물리치셨다고요(3:2-8). "내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3:18)까지 가요.

그런데 바로 그다음 줄에서 방향이 바뀌어요.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3:21-23). 놀랍게도 이 구절은 애가 전체 154절의 거의 정중앙에 있어요. 😮 무너진 성의 한가운데, 슬픔의 한복판에 소망이 박혀 있어요.

1923년 미국의 토마스 치좀은 이 구절로 찬송시를 지었어요. 우리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예요. 그리고 애가는 이렇게도 말해요. "주께서 사람의 자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3:33). 징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본심은 사랑이었어요. 해가 다시 떠오르듯 매일 아침 새로 시작되는 그 긍휼의 끝에 부활의 아침을 여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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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 끊어졌다" 싶은 날에도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 담아 두고, 오늘 아침 새로 주신 긍휼을 세어 봅니다.
6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우리의 콧김"이라 불린 왕

예레미야애가 4:1-20 · 신명기 28:56-57

4장도 "에카(어찌)"로 시작해요.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4:1). 순금처럼 귀하던 시온의 자녀들이 이제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다"(4:2)고 해요.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끔찍한 문장 가운데 하나가 나와요. 바벨론의 포위가 길어지면서 굶주림이 극에 달해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4:10). 😢 수백 년 전 모세는 언약을 버리면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어요(신 28:56-57). 그 경고가 그대로 이루어진 거예요. 애가는 이 참상을 감추지 않아요.

그리고 4:20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요.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우리의 콧김", 곧 생명의 숨이라고 불렀어요. 백성은 왕을 숨처럼 의지했지만 그는 눈이 뽑힌 채 끌려갔어요(왕하 25:7). 사람 왕은 생명의 숨이 될 수 없었어요. 참된 생명의 숨은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신 부활의 주님(요 20:22)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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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숨처럼 의지하던 것이 무너질 때, 사람이 아니라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7

대답 없이 끝나는 기도,
그래서 한 번 더 읽는 마지막 구절

예레미야애가 5:1-22

마지막 5장은 알파벳 시가 아니에요. 22절이긴 하지만 첫 글자 순서를 따르지 않아요. 그리고 지금까지와 달리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드리는 기도예요.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5:1). 형식도 내려놓고 마음만 쏟아 놓는 기도예요.

그런데 마지막 두 절이 아파요.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5:21-22). 책이 질문인지 탄식인지 모를 말로 끝나요. 하나님의 대답이 없어요. 😢

그래서 유대 회당에서는 애가를 다 읽은 뒤 마지막 절로 끝내지 않고, 바로 앞 절을 한 번 더 읽어요.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버림받았다는 말이 아니라 돌이켜 달라는 기도로 끝맺으려는 거예요. 그 기도의 대답은 오래 기다려야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말씀이 아니라 아들을 보내 대답하셨어요.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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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대답이 들리지 않는 것 같을 때에도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맺는 글
무너진 성 한가운데서도
긍휼은 아침마다 새로웠다

예레미야애가는 서둘러 위로하지 않아요. 무너진 성을, 굶주린 아이들을, 끌려간 왕을 그대로 보여 주고 다섯 장 동안 울어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울어도 된다는 것, 이 책이 성경에 있다는 것 자체가 위로예요.

그런데 그 울음의 한가운데 "아침마다 새로우니"가 있어요. 절망의 끝이 아니라 한복판에 소망이 있어요. 그리고 그 소망은 무너진 성전 대신 사흘 만에 일어서신 참 성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어요.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3:23)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