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50

욥기,
하나님이 끝내
이유를 말하지 않은 책

고난의 이유를 묻는 마흔 장의 질문에,
하나님은 대답 대신 별과 바다를 보여 주셨다

욥기 1–42장
여는 글

욥기는 "왜?"라는 질문의 책이에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녀와 건강을 모두 잃어요. 친구들은 "네가 무슨 죄를 지었겠지" 하고, 욥은 "나는 억울하다, 하나님 대답해 주십시오" 하고 외쳐요. 그 논쟁이 무려 서른다섯 장 넘게 이어져요. 😄 성경에서 가장 긴 토론회예요.

그런데 마침내 폭풍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은 욥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세요. 1–2장에서 하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끝까지 말씀하지 않으세요. 대신 질문을 하세요.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그런데 욥은 그 앞에서 만족해요. "까닭 없이"라는 말, "복"이라는 말의 이중적인 뜻, 칠 일의 침묵, 대속자를 찾는 외침, 땅속의 지혜, 폭풍 속의 질문, 그리고 딸들의 이름까지 따라가 볼게요.

1부

욥기는 어떤 책일까?

의인의 고난과 하나님의 주권을 다룬 지혜서

욥기의 배경은 족장 시대처럼 보여요. 욥은 우스 땅에 살았고, 가축이 재산이었고, 제사장 없이 자녀들을 위해 직접 번제를 드렸어요(1:5). 고난 뒤에도 140년을 더 살았어요(42:16). 그러나 누가 언제 썼는지는 알 수 없어요. 유대 전통(탈무드)은 모세가 썼다고 전하기도 해요. 에스겔 14:14는 노아, 다니엘과 함께 욥을 의인의 대표로 부르고, 야고보서 5:11은 "욥의 인내"를 말해요. 실제 인물로 기억된 사람이에요.

산문으로 감싼 시1–2장과 42:7-17은 이야기체 산문이고, 그 사이 3:1–42:6은 모두 시예요. 산문의 액자 속에 긴 시의 대화가 들어 있는 구조예요.
가장 어려운 히브리어욥기에는 구약 전체에서 한 번만 나오는 단어가 백 개가 넘을 만큼 많아요. 번역자들이 가장 애를 먹는 책 가운데 하나예요.

※ 욥기가 언제 쓰였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크게 갈려요. 이야기의 배경은 족장 시대로 보이지만, 시 부분은 훨씬 뒤에 다듬어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요.

욥기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하늘 회의
1–2장에서 땅의 욥은 모르는 하늘의 장면을 독자만 미리 알게 돼요.
2
세 친구와의 논쟁
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고난을 죄의 대가로만 설명해요.
3
엘리후의 등장
젊은 엘리후가 끼어들어 고난이 사람을 가르치는 길일 수 있다고 말해요(32–37장).
4
폭풍 속의 하나님
38–41장에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데, 대답 대신 질문을 하세요.
5
회복
42장에서 욥은 회복되고, 재산은 갑절이 돼요.

욥기의 가장 빛나는 고백은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나와요.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19:25). 헨델의 『메시아』는 이 구절로 부활의 아리아를 시작해요. 욥이 그토록 찾던 대속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 줄 분은 우리를 위해 죽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세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하늘 회의부터 갑절의 회복까지

1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욥기 1:6-12 · 2:1-6

욥기 1장에는 땅의 욥이 알지 못하는 장면이 나와요. 하늘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섰는데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1:6). 히브리어로는 "그 사탄"이라고 정관사가 붙어 있어요. 고유한 이름이라기보다 "고발하는 자, 대적하는 자"라는 직책처럼 쓰였어요.

하나님이 욥을 자랑하시자 사탄이 핵심 질문을 던져요.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1:9). "까닭 없이"는 히브리어로 힌남이에요. "공짜로, 대가 없이"라는 뜻이에요.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복을 받기 때문 아니냐, 복을 거두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는 거예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거래가 아니냐는 질문이에요.

그리고 2장에서 하나님이 같은 단어를 쓰세요.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2:3). 욥의 고난은 "까닭 없이" 왔어요. 그리고 욥기 전체가 묻는 질문은 이거예요. 사람은 "까닭 없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의 가장 깊은 대답은 십자가예요. 하나님이 먼저 "까닭 없이", 값없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까요.

돌아보기
하나님을 사랑하는 내 마음이 혹시 거래는 아닌지 돌아보고, 복이 없어도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믿음을 구합니다.
2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런데 원문은 "복"이었다

욥기 1:5, 11, 20-22 · 2:5, 9-10

욥은 하루에 열 자녀와 모든 재산을 잃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 그의 몸에 악성 종기가 나자 아내가 말해요.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2:9).

재밌는 건 여기 "욕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원래 바라크, "복을 빌다, 찬송하다"라는 말이라는 거예요. 옛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을 저주한다"는 말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해서 반대말로 돌려 썼어요. 1:5(아들들이 하나님을 "욕되게" 했을까 봐), 1:11과 2:5(사탄의 말)에도 같은 단어가 나와요.

그런데 1:21에서 욥이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할 때 쓴 단어도 같은 "바라크"예요. 😄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바라크(저주)"할 거라고 했는데, 욥은 하나님을 "바라크(찬송)"했어요. 같은 단어가 정반대로 쓰였어요. 그리고 아내에게 대답해요.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2:10). 고난의 자리에서 욥의 입술은 저주가 아니라 찬송을 택했어요.

돌아보기
모든 것을 잃은 듯한 날에도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고백하며, 내 입술이 찬송을 택하게 합니다.
3

친구들이 가장 잘한 일,
칠 일 동안의 침묵

욥기 2:11-13 · 42:7

욥의 소식을 듣고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찾아와요. 멀리서 욥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그는 변해 있었어요. 그들은 소리 내어 울고 겉옷을 찢고 티끌을 머리에 뿌려요. 그리고 이렇게 해요.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2:13).

많은 주석가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해요. 😄 이 친구들이 가장 잘한 일은 처음 칠 일 동안 입을 다문 것이었다고요. 유대인은 지금도 가족이 죽으면 칠 일 동안 집에 머물며 애도하는데(쉬바), 문상객은 상주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조용히 곁에 앉아 있는 것이 예의예요.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욥이 먼저 입을 열어 자기 생일을 저주하자(3장), 친구들은 서른 장 넘게 설명하고 가르치고 정죄해요.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4:7). 그들의 말에는 옳은 문장도 많았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고 하세요(42:7). 고난당하는 사람 곁에서 필요한 것은 정답보다 함께 앉아 주는 사랑이었어요.

돌아보기
아파하는 사람 곁에서 서둘러 설명하고 가르치기보다, 먼저 함께 앉아 울어 주는 사람이 됩니다.
4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그리고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욥기 9:32-33 · 16:19 · 19:25-27 · 룻기 3:9

친구들과 논쟁하던 욥은 점점 하나님께 직접 따지고 싶어 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너무 크시고 자기는 너무 작아요. 그래서 이렇게 탄식해요.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9:32-33).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양쪽에 손을 얹어 중재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욥의 탄식은 점점 믿음으로 바뀌어요.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16:19). 그리고 마침내 19장에서 욥기 전체에서 가장 빛나는 고백이 터져 나와요.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19:25-26).

"대속자"는 히브리어 고엘이에요. 룻기에서 보아스가 룻과 나오미를 위해 "기업 무를 자"가 되었던 그 말이에요. 욥은 자기 편이 되어 줄 친족, 값을 치르고 자기를 되찾아 줄 분을 찾았어요. 헨델의 『메시아』 3부는 이 구절, "나는 알고 있네,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로 시작해요. 욥이 바라본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세요(딤전 2:5).

※ 19:25-27은 히브리어가 어려워 번역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구절이에요. 욥이 죽음 뒤의 부활을 내다본 것인지에 대해서도 해석이 갈려요.

돌아보기
하나님과 나 사이에 손을 얹어 주신 중보자, 살아 계신 나의 대속자를 바라보며 고난 중에도 소망을 붙듭니다.
5

땅속 깊이 광산을 파는 사람도
찾지 못한 것

욥기 28:1-28

욥기 28장은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요. 논쟁이 잠시 멈추고 지혜에 대한 시가 나와요. 그런데 그 시가 광산 이야기로 시작해요. "은이 나는 곳이 있고 금을 제련하는 곳이 있으며 철은 흙에서 캐내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28:1-2).

이어서 고대 광부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요. 사람은 흑암을 뚫고 들어가고,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갱도를 깊이 뚫고, 발길이 끊어진 곳에 매달려 흔들린다고 해요(28:3-4). 😄 3천 년 전에도 사람들은 귀한 것을 얻으려고 줄에 매달려 땅속 깊이 내려갔어요. 이스라엘 남쪽 아라바 광야의 팀나와 요르단 쪽 파이난에는 이 무렵의 오래된 구리 광산과 제련 유적이 남아 있어요.

그런데 시인은 묻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28:12). 금으로도, 보석으로도 살 수 없고, 깊음도 바다도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해요. 그리고 마침내 대답이 나와요.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28:28). 땅속 가장 깊은 곳보다 깊은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시작돼요. 바울은 그 지혜가 그리스도 안에 다 감추어져 있다고 말해요(골 2:3).

돌아보기
금을 캐듯 세상의 지혜를 쫓기보다, 주를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데서 참된 지혜를 찾습니다.
6

폭풍 가운데 오신 하나님,
대답 대신 일흔 개가 넘는 질문

욥기 38:1-41:34

욥이 그토록 원하던 순간이 와요.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38:1). 그런데 하나님은 욥의 억울함을 해명하지 않으세요. 1–2장의 하늘 회의 이야기도 끝까지 하지 않으세요. 대신 질문을 쏟아내세요.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38:4). 38–41장에 이런 질문이 일흔 개 넘게 이어져요.

그 질문들은 아름다워요.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38:7).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38:31). 묘성은 플레이아데스 성단, 삼성은 오리온자리예요. 까마귀 새끼의 먹이, 산 염소가 새끼 낳는 때, 타조의 어리석음까지 나와요. 그리고 하나님의 유머도 있어요.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 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38:21). 😄

이상하게도 욥은 이 질문들 앞에서 만족해요. 이유를 들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 고난의 이유보다 큰 것은 고난 중에 만나 주시는 하나님 자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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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질문에 대답이 오지 않을 때에도, 별을 매시고 까마귀 새끼를 먹이시는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7

재산은 갑절, 자녀는 그대로 열 명,
그리고 딸들의 예쁜 이름

욥기 42:7-17

폭풍 속 만남 뒤 하나님은 세 친구에게 욥에게 가서 번제를 드리라고 하세요. 그리고 이렇게 기록돼요.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을 주신지라"(42:10). 회복은 자기를 아프게 한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시작됐어요.

숫자를 보면 재밌어요. 양 칠천에서 만 사천, 낙타 삼천에서 육천, 소 오백 겨리에서 천 겨리, 암나귀 오백에서 천(1:3; 42:12). 정확히 갑절이에요. 그런데 자녀는 이전과 같이 "아들 일곱과 딸 셋"이에요(42:13). 왜 자녀만 갑절이 아닐까요? 옛 주석가들은 이렇게 풀었어요. 잃은 자녀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살아 있으니, 열에 열을 더해 결국 스물, 갑절이 된 것이라고요.

그리고 성경은 딸들의 이름까지 알려 줘요. "첫째 딸은 여미마요 둘째 딸은 긋시아요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며"(42:14). 여미마는 "비둘기", 긋시아는 "계피(향료)", 게렌합북은 "눈화장 그릇"이라는 뜻이에요. 😄 고난의 끝에 태어난 딸들에게 향기롭고 아름다운 이름을 붙였어요. 게다가 욥은 딸들에게도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42:15). 그 시대에 매우 드문 일이었어요. 고난을 지나온 사람은 더 넓은 은혜로 살게 돼요.

※ 자녀가 갑절이 되지 않은 이유를 잃은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살아 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은 교부와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일부가 제시한 해석이에요. 딸들 이름의 뜻도 학자들이 풀이한 것이에요.

돌아보기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서 회복이 시작됨을 기억하며, 받은 은혜를 더 넓게 나눕니다.
맺는 글
하나님은 이유 대신
자신을 보여 주셨다

욥기는 고난의 이유를 끝내 설명하지 않아요. 독자는 1–2장의 하늘 장면을 알지만, 욥은 끝까지 몰랐어요. 하나님은 그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욥은 그 대답 없는 만남으로 충분했어요. 이유보다 크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고난에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남을 거예요. 하지만 욥이 찾던 대속자가 이제 우리에게 오셨어요. 하나님은 고난의 이유를 설명하시기보다 고난 속으로 직접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대답하셨어요. 까닭 없이 고난받으신 그분이 우리의 대속자세요.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42:5)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