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33

창세기,
동산에서 시작해
관으로 끝나는 책

에덴동산에서 문을 열고 관 하나로 닫는 책,
그런데 그 관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세기 1–50장
여는 글

창세기는 성경의 첫 책이라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 봤어요. 새해 성경 통독을 결심하면 제일 먼저 펴는 책이니까요. 😄 그런데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놓치는 것이 많아요. 히브리어로 읽으면 이름마다 말놀이가 숨어 있고, 주변 나라들의 신화와 나란히 놓으면 창세기가 얼마나 대담한 선언을 하고 있는지 보여요.

재밌는 건 이 책의 처음과 끝이에요.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동산을 지으시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50:26)는 한 줄로 끝나요. 생명의 동산에서 시작해 죽음의 관으로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 관에는 약속이 하나 붙어 있었어요. 이름 없는 해와 달부터 흙으로 지은 사람, 하늘에 닿으려던 탑, 모리아 산의 어린 양, 얍복 강의 씨름, 그리고 요셉의 관까지, 창세기의 숨은 이야기를 따라가 볼게요.

1부

창세기는 어떤 책일까?

세상과 사람, 죄와 약속, 하나님 백성의 시작을 들려주는 책

창세기는 모세오경의 첫 책이에요. 유대교와 교회는 전통적으로 모세가 기록했다고 받아 왔어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을 향해 가던 광야 시절, 백성은 물어야 했어요.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창세기가 그 대답이에요. 1–11장은 창조, 타락, 홍수, 바벨까지 온 인류의 이야기이고, 12–50장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한 가문의 이야기예요. 온 세상 이야기로 넓게 시작했다가 한 사람 아브라함에게로 카메라가 확 좁혀져요. 하나님이 그 한 사람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을 주시려고 하셨기 때문이에요.

이름의 뜻히브리어 이름은 첫 단어 그대로 “베레쉬트”, 곧 “태초에”예요. “창세기(Genesis)”는 헬라어 번역 칠십인역에서 온 이름으로 “기원, 내력”이라는 뜻이에요.
열 번의 “내력”“이것이 ○○의 내력(족보)이니라”라는 문장이 책 전체를 열 마디로 나눠요(2:4; 5:1; 6:9; 10:1; 11:10; 11:27; 25:12; 25:19; 36:1; 37:2). 에서의 족보는 36:9에 한 번 더 나와요.

※ 창세기를 누가, 언제 기록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여러 견해가 있어요. 여기서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받아 온 모세 저작을 따랐어요.

창세기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모든 “처음”의 책
첫 빛, 첫 사람, 첫 결혼, 첫 죄, 첫 제사, 첫 약속이 다 여기서 시작돼요.
2
족보로 짜인 책
“내력”이라는 말이 책의 마디마다 나와요. 족보가 곧 이야기의 뼈대예요.
3
네 세대의 가족 이야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거룩하기보다 흠 많은 한 가족이 주인공이에요.
4
형제 갈등의 반복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요셉과 형들. 그리고 번번이 동생이 택함을 받아요.
5
약속이 이끄는 책
자손과 땅과 복, 세 가지 약속(12:1-3)이 사람의 실패를 뚫고 끝까지 이어져요.

창세기의 중심에는 이 약속이 있어요.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12:2-3). 바울은 이 말씀을 두고 성경이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갈 3:8)라고 했어요. 아브라함의 한 자손,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에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에요(갈 3:16).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이름 없는 해와 달부터 요셉의 관까지

1

해와 달을 끝까지
이름으로 부르지 않은 이유

창세기 1:3-5, 14-18 · 요한계시록 22:5
주변 나라들
해는 태양신, 달은 달의 신. 별을 보고 운명을 점쳤어요.
VS
창세기 1:16
“큰 광명체… 작은 광명체… 또 별들을 만드시고”

창세기 1장을 천천히 읽어 보면 이상한 점이 있어요. 빛은 첫째 날에 생기는데, 해와 달은 넷째 날에야 만들어져요. 해도 없는데 빛이 먼저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넷째 날에도 “해”와 “달”이라는 이름은 끝내 안 나와요. 그냥 “큰 광명체”, “작은 광명체”라고만 불러요(16절).

이게 왜 재밌냐면요, 히브리어로 해는 “셰메쉬”인데,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던 태양신의 이름이 “샤마쉬”였어요. 이웃 나라들에게 해와 달과 별은 절하고 섬기는 신이었어요. 그런데 창세기는 그 신들의 이름조차 불러 주지 않아요. 그저 하나님이 하늘에 달아 두신 광명체, 곧 등불일 뿐이라고 해요. 그리고 그 등불이 하는 일은 낮과 밤을 “주관하고” 계절과 날을 알려 주는 것이에요. 사람의 운명을 쥔 신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시계예요. 😄 별은 더 짧게 다뤄요. “또 별들을 만드시고.” 온 바벨론이 별을 보며 떨던 시대에, 창세기는 별을 한 줄 덧붙임으로 끝내요.

해보다 빛이 먼저 있었다는 것도 중요해요. 빛의 근원은 해가 아니라 하나님이세요. 성경의 마지막 책은 그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요.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계 22:5). 해가 뜨기 전에도, 해가 필요 없는 날에도 세상을 비추시는 분은 하나님이세요.

※ 창세기 1장이 해와 달의 이름을 일부러 피했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이 주목하는 해석이에요. 본문이 그 이유를 직접 말하지는 않아요.

돌아보기
운세나 형편이 아니라, 해와 별을 등불로 다신 하나님이 내 날과 계절을 붙들고 계심을 기억합니다.
2

“흙돌이” 아담,
그리고 두 번 불어넣으신 숨

창세기 2:7, 23 · 3:19-20 · 고린도전서 15:45-47 · 요한복음 20:22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히브리어로 읽으면 여기에 말놀이가 있어요. 땅은 아다마, 사람은 “아담”이에요. 첫 사람의 이름이 곧 “흙에서 난 자”라는 뜻인 거예요. 우리말로 옮기면 “흙돌이” 정도 될까요. 😄 그리고 죄를 지은 뒤에 들은 말도 같은 말놀이예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

이름 놀이는 계속돼요. 아담이 여자를 처음 보고 외친 첫 노래는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2:23)예요. 남자는 “이쉬”, 여자는 “잇샤”예요. 짝을 이루는 소리예요. 또 “하와”라는 이름은 “살다”라는 말과 이어져서, 성경은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3:20)고 설명해요. 죽음의 선고를 들은 바로 뒤에 아담은 아내에게 생명의 이름을 붙여 줬어요.

그런데 흙이 사람이 된 건 흙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숨 때문이었어요. 헬라어 번역 칠십인역은 이 “불어넣으시니”를 한 단어로 옮겼는데, 신약에서 이 단어가 딱 한 번 나와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2) 하신 장면이에요. 첫 창조 때 흙에 생명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이, 새 창조의 아침에 다시 숨을 불어넣으신 거예요. 바울의 말 그대로예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돌아보기
나는 흙에서 났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불어넣어 주신 숨으로 살아가는 사람임을 기억합니다.
3

성경 첫 질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

창세기 3:7-9, 15, 21 · 누가복음 19:10 · 로마서 16:20

성경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던지신 첫 질문이 뭘까요? “네가 어디 있느냐”(3:9)예요.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담의 위치를 몰라서 물으셨을 리는 없지요. 😄 숨바꼭질에서 술래가 “어디 있니?” 하고 부르는 건 찾고 싶어서예요. 죄를 지은 사람은 숨었고, 하나님은 찾아오셨어요. 이 장면은 수천 년 뒤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어져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그리고 심판의 말씀 한가운데 약속이 숨어 있어요. 하나님은 뱀에게 말씀하세요.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3:15).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 구절을 “원시복음”, 곧 성경에 처음 나오는 복음이라고 불러 왔어요. 2세기 교부 이레네우스도 이 구절을 여자에게서 나실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으로 읽었어요. 발꿈치는 상하지만 머리는 부서져요. 십자가에서 상처 입으신 분이 사탄의 머리를 이기시는 거예요. 바울도 이 말씀을 떠올리듯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롬 16:20)고 했어요.

마지막 장면도 놓치면 아까워요.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었어요(3:7). 사람이 만든 첫 옷, 시들어 버리는 옷이에요. 그런데 동산에서 나가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3:21). 가죽옷이 생기려면 무언가가 죽어야 했어요. 우리의 부끄러움을 덮는 옷은 우리가 짠 잎사귀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어 입혀 주시는 옷이에요.

※ 가죽옷을 짐승의 희생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연결하는 것은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이에요. 본문은 누가 어떻게 가죽을 마련했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아요.

돌아보기
잎사귀로 나를 가리며 숨는 대신, “네가 어디 있느냐”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이 입혀 주시는 옷을 입습니다.
4

“신의 문”이라 불렀더니
성경은 “혼잡”이라 불렀다

창세기 11:1-9 · 12:2 · 사도행전 2:5-11
바벨 사람들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11:4)
VS
아브라함에게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

시날 평지 사람들이 벽돌을 굽고 역청을 발라 탑을 쌓아요. 목표는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11:4)였어요. 하늘까지 올라가겠다는 거창한 계획이에요.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이 웃겨요.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11:5). 😄 사람들은 하늘에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걸 보시려고 한참 내려오셔야 했어요. 성경의 점잖은 유머예요.

이름에도 말놀이가 있어요. 바벨론 사람들은 자기 도시를 “바브 일리”, 곧 “신의 문”이라고 불렀어요.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자부심이 담긴 이름이에요. 그런데 창세기는 그 이름을 히브리어 발랄, “혼잡하게 하다”와 엮어요.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라”(11:9). 사람이 “하늘의 문”이라 부른 곳을 하나님은 “뒤죽박죽”이라 부르신 거예요.

그리고 바로 다음 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약속하세요.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12:2). 사람이 스스로 내려던 이름은 무너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름은 세워져요. 이 이야기는 오순절에 뒤집혀요. 바벨에서 언어가 흩어졌는데, 오순절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각자의 말로 하나님의 큰일을 들었어요(행 2:8-11). 탑을 쌓아 올라간 사람들이 아니라, 내려오신 하나님이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모으세요.

※ 고대 바벨론에는 “에테메난키(하늘과 땅의 기초의 집)”라는 거대한 계단식 신전탑(지구라트)이 있었어요. 바벨탑 이야기의 배경을 이런 탑에서 찾는 학자들이 많지만, 창세기의 탑과 같은 건물이라고 확인된 것은 아니에요.

돌아보기
내 이름을 높이려고 쌓는 탑은 없는지 돌아보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합니다.
5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날 산에 온 것은 숫양이었다

창세기 22:1-14 · 역대하 3:1 · 요한복음 1:29 · 로마서 8:32 · 히브리서 11:19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라”(22:2). 하나님의 말씀이 한 단어씩 좁혀 들어와요.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 그리고 셋째 날, 아버지는 번제 나무를 아들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들고 산을 올라요(22:4-6).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르는 아들의 모습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신 예수님(요 19:17)을 떠올리게 해요.

이삭이 물어요.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22:7). 아브라함이 대답해요.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번제할 어린 양을 친히 준비하시리라”(22:8). 그런데 여기 숨은 디테일이 있어요. 그날 수풀에 뿔이 걸려 나타난 것은 “어린 양”이 아니라 숫양이었어요(22:13).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말한 “어린 양”은 어디 있을까요? 약 이천 년 뒤, 요단 강가에서 침례 요한이 손을 들어 가리켜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여호와 이레”(22:14)라는 이름도 원래 “여호와께서 보신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이 미리 보시고 준비하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모리아는 훗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곳이 돼요.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대하 3:1). 이삭을 대신한 숫양이 바쳐진 산에서, 대대로 제물이 드려졌어요. 그날 아브라함은 아들을 돌려받았지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분이세요(롬 8:32).

※ 모리아와 성전 산이 같은 곳이라는 것은 역대하 3:1이 말해 줘요. 하지만 예수님이 달리신 골고다가 같은 산줄기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돌아보기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묻던 질문의 답이 예수님이심을 기억하고,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붙듭니다.
6

두 번 받은 질문,
“네가 누구냐” “네 이름이 무엇이냐”

창세기 25:26 · 27:18-19, 36 · 32:22-31 · 호세아 12:3-4
아버지 이삭 앞에서
“네가 누구냐” —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27:18-19)
VS
얍복 나루에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 “야곱이니이다”(32:27)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고 나왔어요. 그래서 이름이 “야곱”이 되었어요(25:26). 발꿈치라는 히브리어 아케브에서 온 이름인데, 같은 뿌리의 말이 “속이다”라는 뜻으로도 쓰였어요. 그래서 축복을 빼앗긴 에서가 울부짖지요.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27:36). 😄 이름값을 제대로 한 셈이에요.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던 날, 눈이 어두운 이삭이 물었어요.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은 대답했어요.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자기 이름을 버리고 형의 이름으로 복을 받으려 했던 거예요. 그로부터 이십 년 뒤, 형을 만나러 가는 길목 얍복 나루에서 야곱은 밤새 “어떤 사람”과 씨름해요. 이 장면은 소리부터 재밌어요. 얍복(야뽁), 씨름하다(예아벡), 야곱(야아콥). 강 이름과 씨름과 사람 이름이 비슷한 소리로 엮여 있어요.

그 사람이 물어요.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번에는 야곱이 정직하게 대답해요. “야곱이니이다.” 발꿈치 잡는 자, 속이는 자라는 자기 이름을 고백한 바로 그때, 새 이름이 주어져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32:28). 호세아는 이 밤을 이렇게 요약해요. 야곱이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호 12:4). 야곱은 다리를 절며 브니엘을 떠났어요. 이긴 사람이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이상한 승리예요. 새 이름은 속이고 가로채서 얻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고백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예요.

※ 얍복·씨름·야곱의 소리 놀이는 히브리어 본문에서 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으로,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는 않아요.

돌아보기
남의 이름 뒤에 숨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 그대로를 고백하며, 새 이름을 주시는 은혜를 구합니다.
7

창세기의 마지막 장면은 관 하나,
그 관은 수백 년을 기다렸다

창세기 50:19-26 · 출애굽기 13:19 · 여호수아 24:32 · 히브리서 11:22

요셉 이야기의 절정은 아버지 야곱이 죽은 뒤에 와요. 형들은 이제 요셉이 복수할까 봐 벌벌 떨어요. 그때 요셉이 말해요.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50:19-20). 구덩이, 종살이, 감옥까지, 형들이 악으로 짠 모든 일을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는 길로 엮으셨어요.

그리고 요셉은 죽기 전에 이상한 부탁을 해요.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50:25). 애굽의 총리로 누구보다 화려한 무덤에 묻힐 수 있었던 사람이, 자기 뼈만큼은 약속의 땅에 묻어 달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창세기는 이렇게 끝나요.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50:26). 동산에서 시작한 책이 애굽 땅의 관 하나로 끝나요.

그런데 그 관은 기다렸어요. 수백 년이 지나 출애굽 하던 날,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출 13:19). 그리고 광야 사십 년을 지나 마침내 세겜 땅에 묻혀요(수 24:32). 야곱이 사 두었던 바로 그 밭이에요. 재밌게도 “관”으로 옮긴 히브리어 아론은 “언약궤”와 같은 단어예요. 히브리서는 요셉의 이 부탁을 믿음이라고 불렀어요(히 11:22). 관 속에서도 약속은 살아 있었어요. 그리고 그 약속은 결국 무덤을 비우고 살아나신 분,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돼요.

※ 유대 전승(탈무드)에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두 개의 “아론”, 곧 요셉의 관과 언약궤를 함께 메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또 백십 세는 고대 애굽 문헌에서 복된 장수의 상징처럼 쓰인 나이였어요. 둘 다 본문 밖의 이야기로 참고만 해 주세요.

돌아보기
해하려는 악까지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믿고, 지금 내 삶의 끝이 관처럼 보여도 “반드시 돌보시리라”는 약속을 붙듭니다.
맺는 글
동산에서 시작해 관으로 끝나지만,
약속은 관 속에서도 살아 있었다

창세기는 사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보여 주는 책이에요. 동산에서 숨고, 탑을 쌓고, 형제를 속이고, 동생을 팔아요. 그런데 그 모든 실패 사이로 한 줄기 약속이 끊어지지 않고 흘러가요. 여자의 후손, 아브라함의 씨, 이삭 대신 준비된 제물, 새 이름을 주시는 은혜. 이 책의 주인공은 흠 많은 족장들이 아니라, 끝까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창세기의 마지막 관은 끝이 아니라 쉼표예요. 이야기는 출애굽기로, 그리고 마침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로 시작하는 신약으로 이어져요. 재밌게도 칠십인역 창세기 2:4와 마태복음 1:1의 “계보”는 같은 말, “게네시스”예요. 창세기가 기다린 이야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어받아 완성하세요.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50:20)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